깜빡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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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굴 드라이브」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20:11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배경의 음울함이 어딘가 익숙하다. 어쩌면 조선소나 공장 같은 익숙한 단어들을 접해서일지도. 동희가 고향에 내려와 받은 감정에는 짜증과 허탈함과 한 스푼의 그리움이 섞여 있다. 이 미묘한 감정이 반영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는 현실은 우울하지만 밍밍하다. 반장과 동희의 대화에서 이런 지점을 가장 크게 느꼈다. 학창 시절의 반장에서는 사실 찾아보기 어려울 현재 속에서, 반장은 그저 웃는다. 마치 시시콜콜한 이야기처럼 차가운 현실을 내뱉는다. 그것이 어쩌면 가장된 밍밍함일지도 모른다. 반장은 옛적 싫어하던 친구를 초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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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오래된 협약」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20:09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벨라타는 지구와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다. 그렇기에 벨라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구의 관점에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비록 두 행성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모두 인간이라 해도. 이정이 노아의 편지를 조금만 더 일찍 받았더라면, 이정은 노아를 비롯한 벨라타인들을 이주시키려 힘썼을까? 그렇다면 그건 벨라타인을 위한 일이었을까? 오브를 위한 일이었을까? 이정을 위한 일이었을까? 노아를 비롯한 벨라타의 사제들이 무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벨라타가 그 나름대로 나아갈 방향을 분석하고 조율한다는 건 분명하다. 이미 벨라타인은 벨라타의 일부이며, 행성의 삶을 지구인이 손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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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흰 눈과 개」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20:08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오해, 말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화해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말하지 않는 것의 미묘함을 표현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작품의 결말이 조금 더 값져 보인다. '나'와 딸의 유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유대의 끊어짐도 이어짐도 마찬가지다. 오해로 빚어진 보이지 않는 가위는 둘의 유대를 야금야금 잘라내고 있었고, 어느새 각자의 고뇌와 큰 사건에 힘입어 그 유대를 끊어내고 만다. '나'가 인사 담당자로 일하며 겪었을 죄책감과 공포가 유대의 단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공적인 공간에서 이어지던 관계 자르기가 집까지 졸졸 따라온 격이랄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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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제, 「그룹사운드 전집에서 삭제된 곡」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20:05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 근래 청춘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요 몇 년 사이 파릇하고 수수한 청춘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우수수 떨어졌다.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 청춘은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타임머신을 타야 만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작품 속 '나'와 '엄마'를 보면, 실제로 청춘이라는 단어가 과거만의 어떤 것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니 이때의 푸르른 봄은, 사진 속이나 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언가이다. 청춘은 이렇게 보면 젊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특히나 이루고 싶었던 수많은 것들을 놓아 버리거나 빼앗겨 버렸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나'가 '엄마'를 계기로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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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망원」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20:02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람 사이의 마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각보다 녹슬지는 않는다. 물론 상황은 변하고 처음에는 강하던 향도 시간이 지나면 날아간다. 그렇다 해도, 오래도록 별말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관계였다면, 생각보다 오랜만에 봐도 그럴 수 있는 법이다. 동시에 마음이 녹슬진 않아도 밍밍해질 순 있다. 그러니까, 사랑이 호감으로 바뀌고 호감은 익숙함으로 바뀐다. '이모'와 '나'의 관계는 어찌 보면 '이석'과 '나'의 관계보다 거리감이 있다. 그렇지만 관계는 때로 스퍼트를 내며 좁히기도 한다(동일한 속도로 도망치기도 하고). 그래서 '이모와 나'는 실제로 '이석과 나'보다 부르기 편하다.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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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치즈 달과 비스코티」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19:59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신병자와 슈퍼히어로의 유일한 차이점은 '유익하냐'인 것 같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을 현실에서 실현하고 있다는데 실체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아 보이면 그건 비정상이다. 거기에 우리가 흔히 '이상하다'라고 느끼는 특질이 눈에 보이면 낙인은 확신이 된다. 물론 작품의 서술방향을 충실히 따라가면, '나'가 실제로 내면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으레 기피하는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나'는 가볍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으며 원하는 만큼 잘 지낼 수 있는 무생물(돌)과 대화하는 편을 택한다. '나'에게 '마음을 마음껏 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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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19:44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필자는 블로그를 통해 배려니 화해니 용기니 하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열심히 써왔다. 지면이 아닌 실제 세계에 그 단어들을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고민과 행동을 해야 할지, 작품을 읽으며 계속 곱씹어봤다. '나'는 작품 속 서사에서 멀어져 있다 생각하면서도 자꾸 그곳에 끌려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실은 '나' 또한 하나인 세계의 일부였던 것이다. 어찌어찌 빠져나갈 수 있다고 느끼지만 자꾸 끌려 들어간다. '나'는 고민하면서도 세계의 논리에 어긋나게 행동할 수 없다. 애매모호한 자세로 기존 세계에 편승하는 '나'의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데, 막상 스스로가 '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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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펀펀 페스티벌」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16. 19:36
# 2021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최대한 전달력 있는 감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그게 이찬휘 때문인지 펀펀 페스티벌 때문인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고 실은 모든 것이 불편한 것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개인적으로 펀펀 페스티벌과 유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상상할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 '사회생활'이라는 단어가 무엇이며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서 그게 좋다는 건 절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작품을 통해 성인이 되어 만난 사회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습이, 어떤 언어로 표현될 수 있었을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솔직히 말해 펀펀 페스티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