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방/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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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온 택배 - (2)이야기 공방/소설 2021. 8. 26. 10:30
# 순수 창작물입니다. 썸네일도 제가 그렸습니다(저게 한계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각날 때마다 짧게 짧게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김 씨는 우선 반사적으로 그 꼬물거리는 물체가 종이 박스를 넘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오묘한 소리를 내는 그 생명체를 우선 박스에 가둔 것이다. 다행히 양 옆만 봉쇄하니 그 기니피그는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김 씨는 백화점 애완동물 코너에 갈 때마다 징징댔다. 부모님은 항상 있던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그의 투정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계산대로 향하곤 했다. 어린 시절 애완동물 코너에서의 기억은 김 씨에게 박스 속 생명체를 기니피그라고 알려주었다. 박스를 바라보던 김 씨는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김 씨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느릿하지만, 한 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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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온 택배 - (1)이야기 공방/소설 2021. 8. 24. 01:59
# 순수 창작물입니다. 썸네일도 제가 그렸습니다(최선을 다했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각날 때마다 짧게 짧게 이야기를 이어가보려 합니다. 오후 3시였다. 김 씨는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교통과 물류 시스템이 발달한 21세기 서울에서는 전날 시킨 물건을 당일 받을 수 있다. 혜성처럼 달려올 물건을 김 씨는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16분, 연락처에 남겨져 있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문자를 보낸 번호에서 행복한 소식을 전했다. 김 씨는 의자에서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현관을 향해 조심스레 걸어갔다. 만일 배송이 이틀 정도 늦게 왔더라도 김 씨는 여느 때처럼 의자에서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현관을 향해 걸어갔을 것이다. 언택트 시대의 장점은 직장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고, 단점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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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이야기 공방/소설 2021. 6. 24. 16:00
비정상적으로 지친 일상에도, 오늘도 하루하루 벌어가는 분들이 멋집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래의 글은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더 큰 규모의 작품에 충분히 활용될 수 있으니, 감상만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상이나 피드백을 댓글로 공유해 주시면, 꼭 답글 달겠습니다. 핏물이 밴 손수건에서는 연신 흥건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에 젖은 피는 무겁게 착, 하고 타일에 붙었다. 잠을 마지막으로 언제쯤 잔 것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마다 욕실에는 두루마리 휴지와 119에 전화할 수 있는 연락 수단이 필요했다. 그것도 많이. "10분 뒤에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30분 전에 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친 지 2분 정도 되었다. 또 다른 회의가 시작된다.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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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코 앞으로이야기 공방/소설 2021. 6. 8. 14:23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옷장을 열었다. 동그랗게 말린 반팔 반바지들,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한 가을 셔츠들, 위쪽 어딘가에서 곰팡이와 인사할까 몸을 떨어대는 패딩들까지. 5월 첫째 주의 흔한 옷장 풍경이었다. 옷장을 열어보는 건 1년 만이었고, 그건 작년 5월 첫째 주의 공기를 옷장이 머금고 있음을 뜻했다. 목은 성이 목 씨라서 별명이 나무였다. 곧추선 키와 흐느적거리는 팔이 버드나무를 연상시켜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목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은 다음부터 자신의 별명이 싫어졌다. 팔다리가 전부 잘려나가 그루터기만 남아서도 히히대며 웃어야 할 것 같았다. 하염없이. 코로나 19로 목은 직장을 잃었다. 창문 너머 숲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자신의 역할과 소임을 다하다 조금씩 잘려나갔고, 목의 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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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시선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15. 23:53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배와 등이 붙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왔습니다. 배가 고파서는 아니었어요. 내 속엔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할 심장조차 있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2012년 5월 23일에 공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축축한, 생쥐 냄새가 나는 그런 공장은 아니었구요. 그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장소였어요. 뱃가죽이 등가죽에 실제로 달라붙은, 머리만 볼록한 인형들이 줄지어서 솜 채우는 곳으로 갔습니다. 홀쭉해진 배와 등이 펌프질 한 번에 살을 되찾고, 뼈를 얻지는 못하고, 그렇지만 얇디얇고 이모티콘처럼 생긴 심장을 얻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그렇게 탄생된 생명들은 트레일러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흘러다녔어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죠. 나의 경우에는, 당신이요.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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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10. 23:54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이것은 얼마 전 꾼 꿈의 내용으로, 그 내용의 번잡함과 비논리함은 그대로 가져오되, 조금은 읽을 만한 것이 되도록 바꿔본 것이다. 참고로 명확한 기억도 없는 순간에 눈을 뜨자마자 이 별 수 없는 내용을 메모장에 미친 듯이 적어 내렸다는 점에서, 그래도 내 무의식이 인정한 '한 번 볼만한 기억'에 속한다고 자신해 본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몇 분 정도만 글에 투자해 보시길. 부녀가 마트에 들어왔다. 손을 잡고 있지는 않았는데, 아이의 타박거리는 작은 발과 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코 바람직한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발을 허우적대던 아이는 그다지 걷기에 재능이 없어 보였는데, 우려했던 바와 같이 마트 바닥에 으레 있곤 하는 철제 마감의 그 얕디얕은 턱에 걸려 결국 넘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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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떠도는 편지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4. 23:26
제 순수 창작물입니다(제작중입니다). 1. 안녕. B야. 그러니까, 나야. 날 기억할거라 믿지만, 어쩌면 그렇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내 약자를 보고 기억이 나는 사람이 없다면, 죄송하지만 당신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 편지에 대해 잊어주세요. 이미 잊기에 어렵다면, 그냥 태워주세요. 아, 라이터를 쓰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일수도 있겠네. 그럼 그냥... 괜히 무리하지 말고... 그냥 근처 시냇물에 살포시 올려둬주면 고맙겠어. 언젠가 내가 다시 찾아갈 수 있게. 음... 이제 너라고 믿을게. 잠시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이야기 시작할게. 무척 긴 시간을 고민하다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어. 사실 주소를 알고 있는데, 다시 보니 왠지 확실치 않더라. 그리고 정말 그 주소로 보내면... 아니다. 그냥 확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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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말했다.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4. 00:30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눈을 떴다. 먹을 수 없는 냄새가 가득했지만 따뜻한 굴에는 나와 비슷한 꼬물거리는 것들과, 그보다 월등히 큰 존재 둘이 있었다. 그들이 형제와 부모였다는 것은 개념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수많은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눈을 뜨게 된 지 몇 주 안 되어 보금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보단 매주 새 형제들이 생겼기 때문에, 정확히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어찌 되었든 직전까지는 굴이었을, 후두둑 떨어지는 흙더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 위태로운 가로줄과 세로줄만이 작은 몸체를 지탱할 따름이었다. 생각보다 촘촘해서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발바닥에 걸리는 느낌은 전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