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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공방/소설 2021. 8. 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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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 창작물입니다. 썸네일도 제가 그렸습니다(저게 한계입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각날 때마다 짧게 짧게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김 씨는 우선 반사적으로 그 꼬물거리는 물체가 종이 박스를 넘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오묘한 소리를 내는 그 생명체를 우선 박스에 가둔 것이다. 다행히 양 옆만 봉쇄하니 그 기니피그는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김 씨는 백화점 애완동물 코너에 갈 때마다 징징댔다. 부모님은 항상 있던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그의 투정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계산대로 향하곤 했다. 어린 시절 애완동물 코너에서의 기억은 김 씨에게 박스 속 생명체를 기니피그라고 알려주었다.

     

    박스를 바라보던 김 씨는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김 씨는 평소에는 조용하고 느릿하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였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건 김 씨는 물었다. 물었다기보다, 전화선을 넘어 상대방을 물어버리려 했다. 난처해하던 담당자는 '생물은 반품 조치가 어렵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만 반복했다. 당연히 환불 조치는 진행할 것이며, 기존에 주문하고자 했던 물품을 무료로 보내주겠다는 직원의 말에 김 씨는 일축했다.

     

    "더 이상 택배 보내지 마세요."

     

    김 씨는 환불 조치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 그리고 기니피그를 데려갈 수 없는 말같지도 않은 이유를 한 번 더 듣는 대신 전화를 꺼버렸다. 박스 속 물체는 움직임이 조금 굼떠졌다. 서둘러 컴퓨터를 켠 김 씨는 기니피그를 검색해 보았다. 털 색, 길이, 소리 등의 특징부터 식용으로 먹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전복을 먹으려 했던 김 씨는 아주 잠시 링크 속 썸네일에 담긴 통돼지구이, 아니 통기니피그구이를 바라보았고 배가 무척 아파졌다.

     

    김 씨의 저번 방은 애완동물을 반입할 수 없는 상당히 빡빡한 곳이었다. 이번에 구한 방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애초에 집주인이 들어올 일이 없으니,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몰랐다'고 하면 될 일이다. 생각보다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고 김 씨는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 동물을 키우고 싶었던 김 씨는 한 번도 자신의 바람을 실현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묵언수행은 끈적한 영향이 되어,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하면서도 새로 애완동물을 키워봐야겠다는 생각만 들고 실현 의지는 가질 수 없었다. 마침 눈 앞에 나타난 기니피그는 불청객이었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게다가 김 씨가 기니피그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의 절반 이상은 그것의 생명을 앗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데, 도살이나 도축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답게 김 씨는 섣불리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기절시켜 밖에 내보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개나 고양이를 유기하면 죄가 되는데 기니피그를 유기하는 건 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만일 기니피그를 유기해도 죄가 안 된다면 그건 너무 슬플 것 같았고, 굳이 그것을 확인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김 씨는 점점 퍼지는 특유의 찌린내를 맡으며, 기니피그 사육법이라는 검색어를 차분하게 쳐 넣고 있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분명 저녁에 전복죽을 먹을 생각이었다.

     

    지금 김 씨는, 무언가를 먹을 생각보다 먹일 생각을 우선 해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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