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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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10. 9. 22:00
# 의미 있는 감상을 전달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 백신 2차 맞고 하루 지났습니다. 온몸이 쑤신 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ㅎㅎ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그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면, 적어도 1/70억의 확률이나마 우리는 재회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개입하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작디작은 확률마저 암흑 속으로 침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인간은 망각한다. 잊지 않았다면 우리의 뇌는 장기기억 단백질들로 차곡차곡 채워져서, 부풀어 오르다 터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머리가 터지는 대신 소중한 기억들을 고르는 법을 익혔다. 작품은 재회할 수도 망각할 수도 없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 단어는 서로 만날 수 없다. 만남이 끝나면, 기억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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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레귤러」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10. 8. 11:30
# 의미 있는 감상을 전달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여담으로 시작해보고 싶다. 'regular'라는 영단어가 '보통의' '균형 잡힌' '단골손님'처럼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의미들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다양한 의미들을 잡아 내어 작품 속에 녹여낸 작가님께도 감탄했다. '보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한 '보통'과 이상적인 세계에서 바라는 '보통'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완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안전을 위해 잠금장치를 늘려야 하는 현실과, 안전을 위해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모습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감정을 통제하는 레귤레이터의 존재만큼은 독특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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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시뮬라크럼」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10. 7. 11:30
# 의미 있는 감상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인간은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그리고 홀로그램으로 점점 가둘 수 있는 순간의 범위를 늘려 왔다. 만일 특정 시공간의 인격을 통째로 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시뮬라크럼의 존재는 더 이상 사진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이 특히 강렬했다. 악마의 편집을 거친 영상을 진실이라고 보기 힘든 것처럼, 엘리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뮬라크럼도 엘리를 온전히 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반대다. 시뮬라크라에 집착한다는 건, 시뮬라크럼이 반영하는 좁은 시공간 속에 스스로를 욱여넣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변화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직면하기 어려운 힘든 일이 지나고 기록에 의존하던 때가 있었다. 빛나고 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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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10. 6. 11:30
# 의미 있는 감상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근래 읽은 작품 중 가장 SF처럼 느껴졌다. 우주는 언제나 미지를 품고 있으며, 따라서 우주를 논한다는 건 그 자체로 일종의 공상이다. 넓디넓은 우주 속 지성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을 '지적 생물종'이라고 묶어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원해지려는 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떠한 지성도 영원히 원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공상 속의 공상에서라면 가능할지도). 그러나 지성은 집단을 통해 기록의 힘을 빌려 영원한 척할 수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성은 이어지며, 어찌 보면 그것이 지성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책 만들기'에 비유한 작품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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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파자점술사」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10. 5. 11:30
# 의미 있는 감상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대만의 2.28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작품을 읽으며 의아한 부분이 많았다. 부록에 링크를 걸어 둔 내용을 추가로 읽고 나서 다시 읽어 보니, 한층 느낌이 새로웠다. 파자점술이라는 단어 또한 생소했는데, 언어를 분석해서 점을 친다는 발상이나, 그 기법을 이용하여 서술된 이야기에 모두 매료되었다. 언어가 지닌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자'는 격언이 마음에 와닿는다. 지나치게 명랑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타당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맞는 말인데, 우리는 지금껏 이 격언을 지나치게 자주 어겼다. 개인은 저지르지 않는 끔찍한 일들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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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상태 변화」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10. 2. 11:30
# 의미 있는 감상의 전달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영혼은 물질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영혼은 정신 활동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만질 수도 측정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다. 영혼이 눈에 보인다면 육체와는 다른 형태여야 할 것이다. 영혼이 물질계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더 전전긍긍해야 할 것이다. 영혼을 만질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좀 더 만질 수 있는 형태로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경직될 것이다. 영혼의 물성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도, 전문적인 상황에서도 쓸 수 없다. 대신 이 작품에서만큼은 써볼 수 있다. 귀한 기회이니 좀 더 발음해 보자. 영혼의 물성. 혼의 물성. 백의 물성. 넋의 물성. 육체나 정신은 죽더라도 영혼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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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즐거운 사냥을 하길(Good Hunting)」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10. 1. 11:30
# 이 작품은 넷플릭스 「러브, 데스 + 로봇」에서 「굿 헌팅」이라는 이름의 영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의미 있는 감상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몰락한 신비의 세계' 구도는 이미 익숙하게 보아왔다. 그렇지만 두 세계를 혼합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필자는) 처음 봤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진부하지 않고 다채로웠다. 배경도 묘하게 현대와 달라서 새로웠다. 우리는 흔히 여러 상상을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증기 기관이 장악한 배경의 풍경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편 기술의 앞에서 전통과 신비가 한낱 낭설로 치부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전통과 발전이라는 단어가 서로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 망자의 넋을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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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천생연분」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9. 30. 13:40
# 의미 있는 감상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디지털에, 그리고 매체에 뒤덮여 있다. 그것이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필자 또한 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 사용 시간을 모두 합치면 '하루종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줌 수업을 듣고 나면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고, 태블릿 PC로 계획을 짠다. 이미 휴대폰과 태블릿 PC는 같은 회사 제품이라(애플!) 이용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작품 속 틸리처럼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을 분석해 여러 제안을 하는 기술은 이미 소극적인 형태로나마 실현되었다. 과거에는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들을 '선별'하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한층 더 나아가 수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