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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므레모사」: 회복의 또다른 이름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2. 12. 25. 23:59728x90
# 작품을 읽고 든 생각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해 보았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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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초판 발행
1년 만에 읽어서
더 뜻깊은 작품.
김초엽, 「므레모사」, 현대문학, 2021
# 이런 분께 추천, 안 추천
재난영화나 스릴러처럼 긴박하고 불안감을 주는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 김초엽 작가의 장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께도 추천한다. 달콤한 신혼여행이나, 연말의 따스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집돌이 집순이에게는 조금 피로한 서사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대신 나의 궁금증을(때로는 궁금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해소해주는 유튜브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다.
# 크리스마스
사실 책을 구입할 때까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지점인데(그때는 표지의 알록달록한 그림과 김초엽 작가님의 이름에 보다 끌렸다), 초판 발행일이 2021년 12월 25일로 정확히 1년 전이다. 작품의 분위기는 크리스마스와 정반대라고 볼 수 있을텐데, 또 작가님이 식물 관련 소재를 자주 차용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들어맞는 지점도 있다. 의도하고 발행된 것은 아니겠지만, 날짜가 날짜이니만큼 의미 있다고 느껴졌다.
# 여행과 검문
이야기의 주된 서사는 여행지에서 진행된다. 그렇기에 여행지에 들어가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사뭇 엄격하다. 물론 최근 몇 달 사이 여행을 비교적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나라를 오갈 때 필수적으로 존재했던 '검역'이라는 단어가 아직 낯설지 않다. 소설 속 가상국가에서도 그런 수준의 조심성을 찾을 수 없었던 걸 보면, 우리네 삶도 다소 소설같았다,고 볼 수 있겠다.
# 화학물질의 이중성
작품 속 여행지인 므레모사는 화학물질로 인해 내부 사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공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르슐 내부에서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그 일대는 화학물질 사고에 의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므레모사는 소문은 무성한데 실체는 알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이로 인해 여행객들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매 순간이 불안하고, 또 충격적이다.
# 유안
유안은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다. 급박한 사건 전개 속에서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가려는 모습이 그러하고,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 지점이 그러하다. 어떤 면에서는 프로 정신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지만, 겉으로 그러한 진실을 확인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한편으로 유안을 보면서 약간의 안타까움도 느꼈다. 유안은 강했기 때문에, 그리고 강하다고 평가받았기에 내면의 고통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다. 속에 상처를 담아두었던 경험을 통해 감히 추론해보면, 유안 또한 모르는 사이 속에 곪은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환부를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나는 광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안타까웠다.
# 므레모사, 회복의 또다른 이름
이번 학기에 수강한 문학 관련 강좌에서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감명 깊게 들었다. 회복은 과거로 타임머신 타듯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다. 회복은 어떤 점에서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 달라지는 것이다(cf. 관련하여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글을 쓰면서 보니 두 작품을 함께 읽어보아도 재미있을 듯하다).
므레모사의 회복은 우리가 바라는 방향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비로소 므레모사가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므레모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정상'에서는 멀어지고 있지만, 그 광경이 묘하게 '비정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새로운 질서'라는 말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물론, 므레모사의 회복이 외부인들에게는 회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 다크 투어리즘
처음 이 용어를 접했을 때에는 '폐가 탐방'같이 공포 체험을 즐기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물론 완벽히 분리되는 건 아닌 듯하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그것과는 사뭇 다른 개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짧은 생각으로 다크 투어리즘이란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자 하는 여행이라고 느꼈다.
유안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 내면의 어두움을 지니고 있다(아니라면, 정말 부럽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러한 어두움에 대한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데, 다크 투어리즘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었다. 한편으로 그런 점에서 여행객들은 므레모사가 망가져 있기를 바란다.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 이 부분은 좀 무섭다.
# 글을 맺으며
우리는 감춰져 있는 것들이 더 어둡기를 바라는 것같다. 포장지를 뜯었을 때 더 예쁜 선물이 나오길 바라는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 때로 우리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날아온다. 이럴 때 우리는 안도한다. 그리고 소리 내어 외친다. 거봐!
「므레모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기괴한 일들에 대해서 이번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못했다. 스포일러가 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것을 소비하며 기대를 충족하고 싶지도 않았다. 요 몇 년 사이 우리가 심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기 때문에, 또 회복할 틈도 없이 상처가 벌어졌기에 때로 우리는 어두운 것들을 기대하게 되는 것같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회복'이라는 말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다.
반응형부록. 깜빡임 공방의 또 다른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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