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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리데기」: 바리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10. 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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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정보: 구연 김석출, 역주 이경하, 기획 박희병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

     

     

     

     

     


    총평

    죽음

    바리

    생명


    「바리데기」, 돌베개, 2019.

     

     

     

     

     

     

     

    # 이런 분께 추천, 안 추천

    한국의 전통 신화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펴 볼 만하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옛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니, 짧은 분량에 비해 읽기 힘들 수 있다. 웹툰 '신과 함께' 속 뼈와 살을 살리는 꽃의 원조격인 이야기가 등장하는 작품이니, 관련하여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중후반부에 집중하여 독서하기를 추천한다. 「바리데기」 이야기와 관련한 충분한 해설이 필요한 분께, 이 책은 훌륭한 지침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 입에서 입으로

    「바리데기」는 처음부터 책으로 쓰인 작품이 아니다. 누군가 부르던 무속 신앙의 일부(편하게 노래라고 생각해 보자)가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만 전달되던 이야기를 누군가 글로 받아 써 보기도 하고, 녹음도 해보고 잘 정리된 책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기록된 이야기는 어느새 웹툰, 전시, 그림처럼 다양한 분야로 퍼져 나갔다.

     

    # 수없이 비슷한 이야기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던 이야기이다 보니, 같은 이야기인데 다른 부분들이 있다.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현대인에게 버겁다. 우리가 이 '수없이 비슷한 이야기들'을 모두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바리데기」를 바탕으로 여러 비슷한 「바리데기」에 대해 함께 설명하고 있으니,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는 것보다는 분명 이해가 빠르게 될 것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생생한 이야기보따리들이 가득하니, 한 번쯤 궁금한 옛이야기가 있다면 제목을 검색해 보시길.

     

    한국구비문학대계

     

    gubi.aks.ac.kr

     

    # 대표격 줄거리

    앞서 밝혔던 것처럼 '수없이 비슷한 이야기들'(다른 정확한 말로는 '각편'이라고 한다)이 존재하지만, 「바리데기」라고 이름 붙은 이야기들에는 당연히 공통점이 있다. 경로당에서 어르신이 말해 주는 옛이야기에 「바리데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공유하는 대표격 줄거리를 적어 본다.


    오구 대왕 부부는 아들을 낳고 싶었지만 계속 딸만 낳는다.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태어나자 오구 대왕은 밖에 내다 버리라고 말한다.

     

    버려진 바리데기는 다행히 죽지 않고 자라난다.

     

    한편 오구 대왕은 불치병에 걸리고, 병을 낫게 하려면 딸들 중 한 명이 고난을 뚫고 약을 구해와야 한다.

     

    여섯 딸들 중 아무도 모험을 떠나려 하지 않고, 이때 다시 궁에 복귀한 바리데기가 약을 가져오겠다 한다.

     

    머나먼 길을 떠난 바리데기는 약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아들 셋을 낳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죽었을 힘든 길을 통과한다.

     

    몇 년이 흘러 끝내 약을 손에 얻은 바리데기가 오구 대왕에게 돌아갔지만, 이미 오구 대왕은 죽고 난 뒤였다.

     

    이를 본 바리데기가 오구 대왕의 시신 묻는 것을 멈추게 하고,

    머나먼 저승 세계에서 가져온 꽃을 이용해 오구 대왕의 뼈와 살과 영혼을 살려 낸다.


    # 2021년에 보는 바리데기(1)

    솔직히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불합리한 이야기로 보인다. 바리데기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지고,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겪지 않아도 될 수많은 고통을 이겨낸다. 약을 구하면서는 예기치 못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게 된다. 우리가 2021년에 「바리데기」를 읽을 때에는 이러한 지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자.

     

    바리데기는 버려졌다. 그렇지만 살았다. 이렇게 살아난 바리데기는 유일하게 오구 대왕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바리데기는 당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던 '남자'도 이겨내지 못할 역경을 깨부수고 과업을 완수했다. 본인이 뱉은 말을 지켰다. 경우에 따라 바리데기가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라면 바리데기는 버려진 딸에서 오구 대왕을 살리고 신위를 취득한 존재가 되었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세계에서 신격을 취득하였다는 건, 세계를 이겨냈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볼 수 있다. 특정 성별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세계 속에서, 「바리데기」는 주체적이고, 강인하고, 능력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이해해 본다면, 2021년에도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 2021년에 보는 바리데기(2)

    이번에는 요새 이야기들을 아주 잠깐 생각해 보자. 최근의 이야기들에는 손가락 한 번 튕기면 생명체의 절반이 사라진다거나, 한 주먹에 수십 미터의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먼치킨의 시대다. 이런 세계에서 살고 죽음의 문제는 엑스트라 배우가 받는 일당만큼이나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바리데기」는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버려진 자식에 불과했던 바리데기가 저승을 관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바리데기는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잉태하고(그게 적절한 절차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죽음을 이해해야 했다. 말 그대로 '죽을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힘썼고, 그것은 생명과 죽음의 무게를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목숨 하나는 사과 하나처럼 쉽게 발음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리데기」는 우리가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접한 여러분이라면, 생과 사를 가를 만한 순간, 힘겨운 길임을 알더라도 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바리는 우리보다 힘겨운 길을 헤쳐 나갔으니까. 

     

    # 옛이야기 다시 듣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우리가 옛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가 달라져서'이다. 내용이 어렵다고 느끼기 이전에 들리는 단어 자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만일 사람의 억양이나 말투 등을 모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현대어로 재구성한 옛이야기를 옛사람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술이 있다면 좀 더 완전한 느낌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웹툰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방향이 세련되었겠지만, 원형의 느낌을 살리면서 시대에 맞게 바뀌어가는 느낌의 콘텐츠도 되게 괜찮을 것 같다. 누군가... 해주겠지...!!!!!

     

    # 글을 마치며

    글을 쓰며 「바리데기」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다시 생각해 봤다. 사실 책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지나간 것들을 아쉬워하는 것이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님을 알지만, 당시 느낌 그대로의 「바리데기」를 접해보고 싶다.

     

    황톳빛 땅에 짚신이 어지럽게 얽히고, 나무에는 삼색의 천이 걸리고, 소매가 넓은 빨간 비단옷을 하늘거리는 사람이 그려진다. 그 가운데 펼쳐지는, 신을 기리는 외침을 접해보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이만 '신과 함께' 단행본을 읽으러 가보겠다. 최대한 현대적인 시선에서 재구성된 바리데기 관련 전시도 찾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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