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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9. 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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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병렬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키워드만 읽고 가셔도 좋습니다!

     

    # 처음으로 예약 주문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초판 1쇄들이 점차 제 책장을 채우고 있는데, 마음이 든든하면서도 조금 벅찹니다. 과연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 그래요!

     

     

     

     

     


    총평

    잊힌 것들.

    평범해진 것들.

    비범했던 것들.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자이언트북스, 2021 

     

     

     

     

     

     

    # 이런 분들께 추천, 안 추천

    SF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그것도 강력히 추천이다. 식물과 관련된 학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아포칼립스와 유사한 장르에 질린 분들께는 안 추천. 장편소설에 익숙지 않더라도, 의외로 괜찮게 읽힌다.


    # 참고문헌

    책의 맨 끝에는 단행본들로 이루어진 참고문헌 목록이 있다. 소설의 말미에 있기에는 생각보다 방대했다. 물론 작품 속 식물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고 조형하는 단어와 문장들은 생각보다 현실이었다. 참고문헌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왠지 존경심이 일었다.

     

    SF라는 장르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는 시도이다. 아무리 새로운 세계이더라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법칙이 있기 마련이다. 「지구 끝의 온실」 속 세계에는 명확한 법칙과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전혀 생소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우리가 익숙하게 탐험할 수 있는 이유이다.

     

    # 평범해진 것들

    평범하다는 건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혹은 '누구나 그렇듯이'와 같은 문장들을 품고 있다. 평범하게 살기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이곳저곳에서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더스트 사태 시기의 인간들에게, 평범하다는 단어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서, 그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처절했을 풍경들을 보며 평범함의 소중함을 느꼈다.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모스바나를 보며 평범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환경에 유리하게 적응한 식물인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기와 이후 형태가 많이 달라진다. 더스트와 주도적으로 싸워 나갈 힘을 갖추었었지만, 더 이상 힘을 쓸 필요가 없어지자 동네 잡초가 되어버린다. 식물에 자아가 존재할 리는 없지만, 이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했다. 

     

    모스바나는 김승옥의 「역사(力士)」 속 서씨를 닮았다. '힘을 숨긴 슈퍼히어로'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감탄했다.

     

    # 잊힌 것들

    비범한 것들이 평범해지려면 우선 비범함을 잃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비범했음을 잃어야 한다. 아무도 비범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비범한 것들은 평범해질 수 있다. 작품 속에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 잊힌 수많은 진실들이 등장한다. 세계가 정상이 된 것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땅에서 솟아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잊힌 것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점은, 우리 개개인이 혼자만의 힘으로 완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의지와 탐욕과 애정들이 모여 세계를 지탱하고 있으며, 그것이 있기에 비로소 개개인은 완전해질 때가 있다.

     

    # 인간성이란?

    인공두뇌를 장착한 레이첼은 과연 인간인가? 인간이라면, 인간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레이첼을 보며 가장 의문이 들었던 지점이다. 교체를 거듭하며 레이첼은 인간의 부분을 점점 줄여 나간다. 그 과정에서 지수의 조작 한 번으로 감정의 혼동을 겪기도 한다. 미래의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공적인 인간성과 실제 인간성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감정을 표현하지만, 많은 경우 상황이나 생물학적 자극에 의해 통제당하곤 한다. 넓은 의미의 인간성이란 따라서 감정을 가지고, 이를 때때로 이성적이지 않은 형태로 표출하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나 싶다.

     

    결국 레이첼을 인간이라 볼 수 있다면, 레이첼이 지수에게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거짓이라 보기 어렵다. 그래서 굳이 불편해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어쩌면 아직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적인 측면이 레이첼을 감싸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하나 더. 인간의 모든 비밀을 파헤쳐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면, 혹은 인간의 감정 유발 기제를 모두 파악해서 인간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까? 조금 더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느낀다.

     

    #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마음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에 등장하는 '마음씨', 그리고 이 작품에서 모스바나 씨앗을 뿌리는 마을 사람들. 두 집단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마음을 씨앗의 형태로 남긴다는 것이다. 씨앗에서 발아한 식물들이 자라나서, 세상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는 점도 닮았다. 

     

    # 김멜라 작가님의 작품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전하영 외,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동네서점 Edition

    # 개별 작품에 대한 짧은 감상은, 블로그 내 '짧게 읽는' 게시글에 작품별로 보다 간단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총평 사회적인 문제가 더 이상 고발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꿉니다. 글을 통한 시

    ccamppak.tistory.com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차다. 그들의 마음이 온전하게만 전달된다면, 분명 사회는 멋진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

     

    # 100% 아름답지는 않지만

    나오미와 아마라가 더스트를 피해 다니던 시절,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어디나 그랬다. 안전하지 못한 장소는 원래부터 아름답지 못했고, 안전한 장소도 안전하지 못한 것들에 의해 더럽혀져 갔다. 인간성 운운하기 이전에 당장 다음 날 먹고 살 음식과 물을 구하지 못해 허덕이는 세계 속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속에 작은 씨앗들이 있었다. 때로는 의지라 부르고, 때로는 사랑이라 부르고, 때로는 푸른빛이라 부를 수 있을 씨앗들은 자라났다. 더스트 이후의 세계는 모두 이 씨앗들이 발아한 결과다. 거의 대부분 아름답지 않던 시절에서 아름다움을 지키고 전달하였던 작품 속 인물들에게, 다시 한번 멋지다 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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