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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9. 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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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을 읽고 든 생각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해 보았습니다.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 및 공감도 환영합니다!

     

     

     

     

     


    총평

    점점 무거워지는 세상 속

    아주 짧고 굵은

    무중력 체험


    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민음사, 2016

     

     

     

     

     

     

     

    # 이런 분께 추천, 안 추천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그렇지만 너무 지쳐서 긴 글을 읽을 여력이 없는 분께는 추천하지 않는다. 스탠드업 코미디, 특히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음담패설을 좋아하지 않는 분께는 추천하지 않는다. 우주에 관한 글을 좋아하는 분께 이 소설은 일종의 오락거리가 될 수 있다.


    # 흥미로운 편집점

    작품과 그다지 관계는 없지만, 책 감상이 꼭 내용물만을 파고들 필요는 없으니 언급해 본다. 중간중간 작품에는 우주를 닮은 검은 종이들이 등장한다. 책 자체의 편집을 이용해 서사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시도를 그동안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기했다. 글이 꼭 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구나 싶어서 좋기도 했다. 검고 흰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목의 농담을 농담()으로 생각했었다. 뭐 말의 농담이라는 것도 결국 말의 농도를 조절하는 작업이니,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 스탠드업 코미디

    스탠드업 코미디를 제대로 본 기억은 없다. 열심히 보고 살았으면 이것보다는 좀 더 재밌게 글을 썼겠지. 유튜브에서 한 두 번 봤었나?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 코미디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성적인 표현이나 관련 은유를 사용해서 웃기려고 시도해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책 전체가 거대한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작가의 농담' 부분까지 완벽했는데, 시종일관 독자를 웃기기 위해 힘쓰는 것처럼 보였다. '이래도 안 웃겨? 야 잠깐 기다려봐. 다른 거 가져올 테니까.' 하고 말하는 작가님이 눈 앞에눈앞에 어른거렸다. 외설적인 이야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데 가끔가끔 실소를 맺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종래에는 심각한 서사를 눈앞에 두고 웃었다. 내적으로 실컷 웃었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유머인데, 별일이다.

     

    # 우주에서 웃기

    이 작품을 포함하여 '그래비티', '인터스텔라'같은 영화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삭막한 우주 공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미지의 공간인 우주에서 하하호호 평화롭게 무중력 상태를 즐긴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다큐이므로, 영화나 소설 속 우주 공간에서는 으레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다. 웃기 어려운 상황들이 펼쳐진다는 말이다.

     

    작품 속 우주에는 웃음이 있다. 적어도 웃기려는 시도가 있다. 농담이 있고, 코미디가 있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을 읽으며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아무리 어두운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잠깐만 심각해질 수 있다. 슬픈 일에 잠깐만 심각해질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충만한 마음으로 문제를 다시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 송우영

    송우영은 말을 참 잘한다. 그냥 말만 많은 게 아니라 생각도 많다. 머릿속에 생각을 많이 담고 있으면서 그걸 내색하지 않는 게 프로답다. 송우영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심각한 이야기마저 웃음으로 승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정말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을 웃기기 위해서는 남들 몫의 고민까지 같이 해야 하는 것인가보다 싶었다.

     

    필자는 고민이 많다. 내 고민이 지나쳐서 남들 고민을 대신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쓰는 글들이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생동감 없고, 축 늘어진 나무늘보 같은 거다. 나무늘보에게 '스피디'하고 이름 붙여봐야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 것처럼, 단순히 마음가짐만 바꾼다고 해서 무미건조함이 확 달아날 것 같지 않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그 점에서 송우영을 본받을 만하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정말로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고, 그보다는 대개 문자나 음성이나 영상을 남기게 된다. 음악가는 악보를, 수학가는 공식을, 교수는 논문을, 게이머는 전적을 남기겠지.

     

    거창하게 말했지만 결국 사람은 죽어서 기억을 남긴다.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다면 한 마디의 유행어든, 300부작짜리 대하드라마든 관계 없다. 아직 사후에 대한 고민이 멀게 느껴지지만, 이왕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수 있게 살아가는 거라면, 좋은 기억들로 남고 싶다. 적어도 이 고민을 시작한 지금 이 순간부터는,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신경 쓰기로 했다.

     

    # 유머

    유머라는 말은 놀랍도록 가벼운 느낌을 준다. 반면 유머를 구현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가볍지 않다. 아주 재미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남들보다 한 달씩 먼저 유행어를 알아내는 '인싸'였는데, 4~5개 정도의 인터넷 게시판 동향을 살피며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보곤 했다. 항상 그 사람의 유머에 웃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정말 재밌다고, 그래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성찰하고 고민하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 속에 단 한 줌의 유머도 없다면 그건 좀 너무하다. 우리가 힘들고 지난한 현생을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는 분명 유머에 있다. 그러니 너무 머리를 싸매지는 말자. 의식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로 현실을 틀어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잠시 마음을 무중력 상태로 띄우고 나면, 가시밭길도 바닥만 가시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니.

     

    # 글을 나가며

    우리는 눈앞의 실체만을 움켜쥐고 살아간다. 이일영의 이야기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비현실적 삽화들과 농담, 유머, 그 어느 것도 눈앞의 실체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곧이곧대로 읽기 시작하면 정말 대책이 없다. 마치 필자가 지금 쓰고 있는 웃음기 0%의 마무리글처럼 대책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한편 우리에게는 실체가 보이는 대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몽글몽글한 마음, 가족 혹은 가족과 같은 친밀함을 가진 존재와의 차분함, 심심해 미치겠는데 친구가 흔쾌히 놀자고 할 때의 안도감. 불같이 달아오르는 마음들과 차갑게 식어버리는 마음들. 분명 심장의 온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것들이다.

     

    유머란, 그리고 농담이란 느껴지는 것들을 실체로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지금 필자는 재미없는 상태다. 유머나 농담을 던져낼 만큼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숙고하고, 의식적으로 고민할 거다. 그리고 나면, 충분히 가볍게 뜬 채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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