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헤르만 헤세, 「크눌프」: 크눌프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9. 20. 18:36
    728x90

    # 작품을 읽고 든 생각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해 보았습니다.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 및 공감도 환영입니다!

     

     

     

     

     


    총평

    짧지만

    강렬한

    인상


    헤르만 헤세, 「크눌프」, 민음사, 2004

     

     

     

     

     

     

     

    # 이런 분께 추천, 안 추천

    부담 없는 분량의 책을 원하는 분께 추천. 떠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분들께 이 책은 일종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좋은 일들을 하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책을 읽으며 뿌린 씨앗이 거두어지는 하나의 방향을 고찰해볼 수 있다. 완전히 꽉 닫힌 결말을 선호하는 분들께는, 어중간하게 찝찝할 수 있다. 무책임하다 느껴질 수 있는 인물을 좋아하지 않는 분께는 추천하지 않는다.


    # 단편집? 연작 소설?

    책은 세 개의 단편(「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점도 시공간 배경도 다른 세 작품을 따로 분리하여 보는 건, 그러니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세 작품을 마치 하나인 것처럼 다룰 것이다. 크눌프를 중심으로 본다면, 그런 시선이 보다 타당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 책 「크눌프」는 단편집이라기보단 연작 소설에 가깝다.

     

    # 크눌프, 역마살

    김동리의 「역마」에는 '역마살'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한 곳에 붙어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운명을 이르는 말이다. 크눌프는 이 단어에 잘 맞는 인물이다. 물론 크눌프 본인의 의지에 따라 훌쩍 떠나버리는 듯한 장면이 많지만, 크눌프의 삶을 지켜보면 실은 의지가 운명을 좇은 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크눌프는 본인이 떠나온 길을 잊지 않는다. 심지어 반복적으로 과거를 후회한다. 두고 온 과거를 쉽사리 놓지 못하면서도, 찾지도 못한다. 그저 이곳저곳 헤매며 방랑할 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크눌프의 방랑에는 그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해볼 수 있다.  

     

    # 크눌프, 가벼운 사람?

    크눌프는 이곳저곳 떠돌면서 마음 가는대로 행동한다. 특별히 경제 활동도 하지 않는다. 입에 발린 말들을 하며 환심을 사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크눌프라는 인물을 '가볍다'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필자 또한 이런 감상을 한 번쯤 느꼈다.

     

    그러나 겉모습 몇 개만 가지고 크눌프를 가볍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의 내면을 아주 잠시만 들여다보더라도, 크눌프가 얼마나 많은 고뇌를 품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일견 가벼운 행동들도, 주위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거나 친절하게 대하려는 행동의 일환이다. 이런 배려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크눌프를 좋아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법

    크눌프는 정말 많은 사람과 친하다. 작품을 보며 마을에서 크눌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처음 본 사람이라도 금세 그와 친해질 수 있다. 과연 그 비결은 뭘까. 읽으면서 고민해 봤다. 

     

    크눌프는 재미있다. 다시 말하면 주위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건 단순히 장기자랑이나 뛰어난 입담, 빼어난 용모로 얻어지는 힘은 아니다(아, 물론 이런 것들이 충분하다면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긴 하다). 크눌프는 상대방을 생각한다. 상대의 반응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다. 특히 상대가 속한 집단의 용어를 잘 사용한다. 무두장이에게 가서는 작업 관련 전문용어를 자연스레 사용하는 식이다. 그렇게 크눌프는 금세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탈바꿈한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항상 심각한 얘기만 하고,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없는 상황만 반복된다면 누가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을까? 속 깊은 사람일수록,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일수록 편안함을 가장할 수 있는 법이다. 이건 필자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치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조금 더 쾌활해지자고 생각했다.

     

    # 만인을 위한 개인

    크눌프는 정착하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만의 크눌프가 될 수 없었다. 프란치스카에게도 리자베트에게도 평생 헌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크눌프는 떠돌며 많은 사람들의 크눌프가 되었다. 앞서 '역마살'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던 것처럼 이것이 크눌프의 운명이었다면, 그의 역할을 '만인을 위한 개인'이라 볼 수 있다.

     

    크눌프 개인에게 있어 이것이 좋은 역할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리자베트에 관하여 고뇌하였으며, 마음의 병이나 몸의 병 양쪽 모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으니까. 물론 크눌프에게는 위기의 순간 그를 걱정해줄 사람들이 있다. 크눌프가 그 호의들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면, '만인을 위한 개인'이라는 위치도 생각보다 괜찮았을 것이다.

     

    # 기억

    삶이란 기억이다. 어떤 기억을 남길지, 누구에게 기억을 남길지에 따라 삶은 다르게 흘러내린다. 크눌프는 그런 점에서 훌륭하게 기억을 남기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적당한 타이밍에 적절한 선을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에, 모두에게 (거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조금 다르게 말해보자면, 크눌프는 좋은 기억만을 남기기 위해 노력해왔을 것이다.

     

    한 명의 독자로서, 크눌프가 마음을 터놓은 상대가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 기억으로 인해 사람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된 크눌프가 아쉬웠다. 어느 부분 필자와 겹치는 부분이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 글을 마무리하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 질문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있어 부담스럽고 싫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고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 될 것인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은 언제나 의미 있다.

     

    모두가 크눌프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크눌프의 방식이 크눌프 자신에게 좋은 방식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크눌프 같은 사람이 한 명쯤 있다면, 삶이 두 스푼 정도는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 책으로나마 크눌프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어 재미있었고,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그를 지지하게 되었다.


    부록. 깜빡임 공방의 또 다른 '헤르만 헤세'들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이상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의 눈에 찬다. 이상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적은 글을 발견하고, 어떻게 자신이 이상한지 적은 글을 남긴다. 그런 글이다. <편집자 서문>에 등장하는 하리 할러, 그러니

    ccamppak.tistory.com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교육의 반성

    #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체험이 물씬 담긴 작품입니다. 작품과 헤세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글에서는 최대한 작품 내의 정보만을 바탕으로 작품을 바

    ccamppak.tistory.com

     

     

    헤르만 헤세,「싯다르타」: 깨달음은 스스로

    총평 깨달음이란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2005 # 책을 추천하는 경우 우선 방황하는 분들에게, 인생의 갈피가 잡히지 않는 분들에게 추천드리

    ccamppak.tistory.com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