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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4. 1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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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Pixabay. 하리 할러가 이리였다면, 분명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상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의 눈에 찬다.

    이상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적은 글을 발견하고,

    어떻게

    자신이 이상한지 적은 글을 남긴다.

    그런 글이다.


    <편집자 서문>에 등장하는 하리 할러, 그러니까 <황야의 이리>는 그의 이명(異名)에 걸맞게 '내향성과 고독, 야생성, 불안, 향수, 고향 상실'을 지닌 존재다. 그는 묘한 '마력'의 소유자이며, '고통'을 항상 몸에 담고 있다. 그렇지만 하리 할러는 겉보기엔 음울해 보이는, 종잡을 수 없는 사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이 사내는 친절하게 <하리 할러의 수기>를 남긴다. 이 수기에 쓰인 내용은 하리 할러의 삶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이 하리를 확 바꾸게 된다.

     

    하리는 '스스로 자신을' <황야의 이리>라고 주장했다. '공허의 흑염룡'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이명(異名)은 사실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성을 가리키고 있다. 시민성과 개성이라고 그것을 이름 붙여보려 한다.

     

    하리의 <황야의 이리>와 같은 부류는 두 특성이 서로를 물어뜯어 속을 황폐화한다는 점이 비극이다. 그래서 하리는 사회에 스며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매 순간 스스로를 자학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개인적으로 <황야의 이리론>에서 가장 '맞아! 그렇다!' 하고 느꼈던 건, 인간이 고작 하나나 두 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 사실 하리는 이리와 인간 두 개의 양극단뿐 아니라 수없는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진 프리즘과 같다.

     

    <황야의 이리론>은 이를 알기에 고통받는 하리를 꾸짖고 또 계몽하고자 한다. 하리는 이후 사랑과 우정의 대상인 헤르미네와 악사 파블로와의 만남을 통해 본인에게 가해져 있던 하중을 줄이고 웃으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음악에 대해 확고한 시각을 지니고 있었던(클래식 제일주의?) 하리는 재즈 음악을 들어보기도 하고, 생전 추지 않던 춤을 추기도 한다. 여러 사람과 사랑을 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던 부분 중 하나는, 자신의 개성을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성을 던져버려야 한다는 부분이다. 극장에 입장한 이후 보여지는 수많은 세계들은 그 하나하나가 소설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헤르만 헤세의 넘치는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작품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관조'라고 느꼈다. 여러 자신들을 활용하여 살아가는 것, 웃어넘기는 것, 그러면서 적정한 선을 지키며 사는 것에 대해 작품에서 논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런 결론을 내면서 조금 아쉬웠다. 마술 극장에 직접 가본다면, 나도 하리처럼 깨달을 수 있을 텐데.

     

    위 글은 <황야의 이리>를 읽고 필자의 감상을 위주로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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