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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현대인의 문학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6. 8. 02:06728x90반응형
총평
21세기에 딱 맞는 급전개
그러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조소를 부르지 않는 이야기.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2005
※ 여담이지만 어린 시절 받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무려 10년이 넘게 방치해두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없었고(
핑계네요), 그보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에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전역 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 권씩 한 권씩 읽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블로그 운영을 포함하여 해야할 일들이 많아 뜸해졌지만, 그래도 거의 45권 가까이 읽었습니다. 아주 먼 미래에라도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즐길 수 있는 삶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네요. 빛바랜 책장을 쓰다듬으며 책을 고르고, 리클라이너에 누워 책을 읽는 삶이 고픕니다.「체호프 단편선」은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작품이다. 책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 책은 너무 마음에 들어 팔거나 버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고이 모셔 두었다. 사실 책을 읽은 지는 시간이 좀 되었는데, 그동안 감상을 글로 옮길 자신이 없어 미뤄두기만 했었다. 아직 수록된 단편소설들을 아름다운 말들로 꾸며낼 자신은 없지만, 솔직한 감상과 감탄을 공유하고자 한다.
관리의 죽음
코로나19라는 마법의 단어 앞에서는 이 이야기도 개연성을 되찾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억지스러운 공상을 하지 않는다면, 러시아 문학의 과감성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말부가 부실하다 싶을 정도로 급박한데, 그렇다고 해서 정말 부실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어쩌면 당신도 사장님 면전에 재채기를 해 침을 튀긴다면...
공포 - 한 친구의 이야기
공포라기보다는 인륜을 져버리는 것같은 사건의 이면에는 사랑 없는 결혼의 냉정함과 잔혹함이 가득하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러시아 문학은 이름이 너무 비슷하고, 또 같은 사람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점이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는 느낌이다)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편이 옳았을까. 문득 생각해 보면, 법적인 책무가 여러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는다는 점,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날아다니는 갈까마귀의 형상은 다분히 공포스럽기도 하다.
베짱이
익숙한 건 잊어버리기 쉽다. 그런데 익숙한 건 익숙한 만큼 소중하다. 그리고 그만큼 미안하다.
예술가와의 사랑은 불같다. 불은 장작이 지속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식는다. 모닥불의 맛을 봐버렸는데 그게 식으면 더 춥다.
결정적으로, 미련을 품은 사람은 비참하고, 갈피를 못 잡고, 그리고 더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드이모프가 아주 순정적으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일에 열중했다.
드라마
너무 솔직한 발언이 아닌가 모르겠지만, 나도 파벨 바실리치의 상황과 행동에 공감했다. 괴성을 지르는 파벨 바실리치가 상상이 되어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미친 듯이 웃겼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강제로 듣는 것만큼 효과적인 고문 수단이 있을까. 없다고 확신한다.
베로치카
풋풋한 느낌이 가득 나는 작품이었다.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의 당혹스러운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느낀다.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도 반전되어 있어서, 별 거 아닌 것 같은 사건이 어떤 경위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사실 알아봐도 별 거 아닌 걸지도 모르지만.
미녀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시각적인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지만, 작품을 읽으며 시각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화려함인지 너무 궁금하다. 막상 묘사된 바와 같은 사람을 보면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감상을 조심스레 추가해본다. 필자는 지나치게 화려하면 못 쳐다본다.
거울
어디서 어디까지가 꿈일까. 모호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인데, 꿈이 사실은 예지몽이 아닐까 싶다는 마음까지 합쳐지면 정말 끔찍하다. 어쩔 수 없다. 꿈에서는 색조가 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 믿어보는 수밖에.
내기
참 독창적인 이야기 구성이라고 느꼈다. 텍스트에 적힌 시간은 무척 허망하다고도 생각했고,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간접 경험을 하기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긴 세월 동안 읽고 먹고 마시는 데 쓴 돈을 생각하면, 변호사는 내깃돈을 그냥 예의상 안 받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티푸스
병자의 시선에서 그리는 이야기가 신선했다. 특히 증상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마치 필자가 독감에 걸렸을 때를 회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놀랐다.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문체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작품의 끝 부분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
주교
지위가 아닌 인간 그 자체를 기억하는 건 혈육뿐이다. 거대한 시스템 하에 혈육마저 없다면, 톱니바퀴와 같은 개인은 기억에서조차 살아 돌아올 수가 없다. 정말 신적인 수준의 존재가 되지 않고서야 망각의 원리에서 자유롭지 않겠구나, 그렇다면 나도 잊히겠구나 싶었다.
너무나도 바쁜 우리네 사회에서 이런 단편선은 슬쩍 읽고 다음날을 기다리기에 좋다. 고전 쪽에도 보다시피 이런 느낌의 작품들이 충분히 있고, 다시 말해 우리는 바쁜 와중에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교양 있어질 수 있다. 생각보다 더 바쁘다면, 누군가 책을 읽은 글을 보며 나중에 읽을만한 책인지 점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위 글은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필자의 감상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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