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4. 17. 23:45
    728x90
    반응형

    세 번째 읽는데, 지난 두 번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이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그 전에는 '기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다지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는데, 마지막 구절이 너무나 여운에 남았다.

     










    총평
    세상을 관조하는
    이미 포기해버린 듯한,
    그런 기린.




    사진 출처: unsplash Jessica Bateman

     

     




    작품에서 아버지는 이미 삶의 의지를 상실했거나, 혹은 속세를 벗어나 버렸다고 느껴진다. IMF 당시를 말 그대로 풍문으로만 들은 세대로서, 납치당하는 사람들의 일상성은 필자에게는 말 그대로 쇼킹한 무언가였다.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한 시절을 견뎌온,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무튼 기린은 그 풍파를 결국 인류의 모습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존재의 변형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기린은 좀 더 높게 굽어볼 수 있을 것이므로,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한 가정의 풍파에 초연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눈 앞의 지하철을 보내려는 아버지의 대사는 끔찍한 경쟁에서 잠시 발을 빼겠다는 말과 다름없고, 푸쉬맨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어 넣어야 했던 그 열차에 제시간에 타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도 속상한 일이겠지만 그보다는 아버지를 다시 보기 어려울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학 의과대학 건물 화장실에서 IMF 포스터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잠들어 있었을 과거의 상흔을 보며 그게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했었다. 작품을 보니 의문이 더 짙어졌다. 화성이고 금성이고 너무 춥거나 덥거나 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데 그런 곳까지 좋겠다고 느껴야 하는 삶의 현실이란, 진짜 어떤 것일까.

    작품의 사회에서 '풀맨'이라는 건 어쩌면 다른 의미의 '푸쉬맨'일지도 모른다. '풀맨'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욱여넣어져서라도 들어가기를 바라지, 거기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실상 청년실업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21세기에도... 이런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느껴진다.

    우린 이 글을 보며 무엇을 느껴야 할까? 실은 성추행을 자행하는 더러운 사장이나, 작중 감독의 헛소리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A4 용지 두 장 정도 분량으로 말해볼 수 있었다. 수업을 앞두고 있었다면 분명 이런 이야기를 준비해 갔으리라.

    하지만, 마지막 문단을 보는 순간 기린이 고개를 돌린 게 너무도 상상이 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 마지막 문단과 함께 읽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죄송하게도, 저작권 문제로 구절을 직접 인용할 수는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