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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르만 헤세,「싯다르타」: 깨달음은 스스로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8. 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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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깨달음이란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2005







     

     



    # 책을 추천하는 경우
    우선 방황하는 분들에게, 인생의 갈피가 잡히지 않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다. 특히 정신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필자 또한 개인적으로 방황하고 있었고, 방황하고 있다. 다만 「싯다르타」를 읽으며 미래의 자신이 그려야 할 길의 한 부분을 엿볼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 살아가던 중 저질렀던 과오를 반성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자책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는 분들 말이다. 싯다르타는 작품 속에서 현인 중의 현인으로 소개되는데, 그런 싯다르타조차도 실수를 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 실수에 그리 오래 얽매여 있지 않다. 그것이 올바른지 아닌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지만, 적어도 실수를 했을 때 자책만 해서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다. 싯다르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독자 분들께서도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 배움
    싯다르타라고 하면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우선 떠오른다. 두 이름이 조화롭게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르만 헤세와 불교라니. 실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이름이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그 생각 자체가 선입견이었음을 통감했다. 자신 있게 말하겠다. 필자보다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에 대해 훨씬 잘 이해하고 있다고.

    어디선가 이 작품을 어른들을 위한 <데미안>이라는 부제로 설명하는 경우를 보았다. 정말 그 말에 걸맞는 작품이다. 좀 더 인간답게, 소박하게는 좀 더 멋있게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배움이 체화되기 위해서는 실제 경험이나 강렬한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 배경과 나
    작품을 읽으면 싯다르타라는 인물이 생각보다 멋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세계가 뒤바뀌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마다 그의 세계는 산산이 부서지는데, 싯다르타는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싯다르타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환경이 아닌 '배경'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주변 환경이 결코 스스로보다 중요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싯다르타는 모든 배경의 변화 그 자체를 순환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작품을 통해 '나'를 지키는 것, 그리고 '나'의 흐름에 따라 삶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를 지키려면 그에 걸맞은 주관이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여러 해에 걸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보고 들어야 하는데, 아직 필자도 갈 길이 멀었다. 다행히 요새는 꼭 발로 뛰지 않더라도, 인터넷 세계에 참여하여 스스로의 견문을 넓힐 수 있다. 작은 행동들이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면 좋겠다.

    # 싯다르타의 아들에 대해
    작품을 통틀어 싯다르타라는 인물이 조금 한심하다고 느껴진 유일한 장면은 그와 아들의 생활이었다. 과연 싯다르타의 아들은 어떤 사람이 될까? 결코 싯다르타와 같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보내주지 않았고, 그것이 아들에게 독이 되었다. 이 부분은 오히려 환경에 흔들린 경우라고 본다.

    '나'를 우선시하는 것과 '나'를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또 타인을 배려한다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 이기심을 동반하는 가해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기심을 담은 배려를 자행한 적이 있다. '나'를 우선시하기 위해 겉으로는 아름다운 말을 쏟아내며 속으로는 상대를 곪게 했다. 그게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 너무 얼마 되지 않았다. 작품을 읽으며 한 번 더 개인적인 경험을 되새길 수 있었다.

    # 끝을 내며
    여전히 배움은 지혜를 동반하지 않았으므로, 깨달음까지는 아직도 멀고 먼 고행길이 남았다. 먼 훗날 삶을 돌아보았을 때, 고빈다의 그것과 닮아 있더라도 무척 감사할 것 같다. 싯다르타의 그것과 닮아 있다면? 아마 그렇다면 이미 삶을 돌아보지 않겠지. 그저 앞만 보고 가겠지 싶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희노애락이 모두 녹아 있는데, 그것들이 모두 뭉쳤을 때 어떤 색이 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이 인간과 물감, 그리고 빛을 구분하는 지점이다. 세속과 탈세속의 경계를 묘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삶일 텐데, 그 비중을 얼마나 둘진 결국 스스로에게 달렸다. 한 가지는 확실한 데, 두 가지를 모두 겪어 봐야 무엇이 좋은지 진정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생애 동안 두 경계를 넘나들며 주관을 찾고, 더 발전하고 싶다.

    이 작품을 읽은, 그리고 읽을 모든 분들이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서양풍의 연꽃. 헤르만 헤세와 싯다르타와의 관계 같아 첨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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