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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사색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8. 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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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측면에서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적어 보았습니다. 시간에 쫓기시는 경우, 마음에 드는 태그만 읽어 보셔도 좋습니다.

     

     

     


    총평

    깊은 생각은

    충분히 침잠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민음사, 2005

     

     

     

     

     

     

     

     

    # 이런 분께 추천, 안 추천

    세상의 작은 것들에 신경 쓴다면 공감 포인트가 많은 책이다. 세상을 좀 삐딱하게 보길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공감 포인트가 많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된다면 이 작품이 일종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사색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정말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다. 돌려 말하는 것을 즐겨 듣지 않는다면 책을 읽으며 머리가 아플 수 있다. 현실을 행복 그 자체로 보는 경우, 불편한 작품이 될 수 있다.


    # 일기? 전문서적?

    내밀하고 회고적인 일기처럼 느껴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전문서적의 냄새를 풍기는 책이다. 이야기는 단순히 말테의 공상, 혹은 상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조망하며, 역사적 사건이나 전문가의 이름을 빌려 말을 꺼내기도 한다.  이것은 그저 개인적인 체험이나 생각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말테의 수기가, 실은 깊은 사고와 통찰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따라서 말테의 수기는 말테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말테의 보고이며, 고찰이다.

     

    # 낯선 곳, 낯선 생각

    말테가 수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힘 중 하나는 '낯섦'에 있다. 말테는 그에게 새로운 공간인 파리에 당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낯선 곳에서 한 체험들은 새로운 감각들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그의 개인적인 기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말테는 수기를 계속해서 써 내려간다. 음울한 파리 속 작은 부분들과 그가 살아온 행적들을 묶어, 하나의 생각으로 풀어낸다.

     

    정확히 작품과 일치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는 생각을 하기 위해 익숙한 곳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 속에서 인간은 쉽게 각성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각성이란 아메리카노 3잔을 연거푸 마셨을 때 느껴지는 그런 각성은 아니다. 그렇다기보단 처음 가 본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을 때 친절한 현지인의 안내를 받고, 어느새 그의 집에서 파티에 참여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런 각성이다.

     

    낯선 곳에서 우리는 낯선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건 단순히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며, 자연스레 우리의 기억과 연결되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새 의미 있는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 될 것이다. 말테의 수기처럼 말이다.

     

    # 사색을 이끄는 사색

    사색이라는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사각사각한 감촉을 느낄 수 있다. 책을 넘길 때 느껴지는 다소 예리하면서도 보드라운 감촉이라 표현하고 싶다. 작품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와, 이 집 사색 잘한다'였기 때문에, 이 감촉이 계속 손끝에 맴돌았다.

     

    릴케가 작품을 써 내려가며 담은 내용들은 하나하나가 통찰력 있고 묵직하다. 작품을 읽으며 공감 가는 내용들도 더러 있었지만, 쉽사리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깊이에 감탄했다. 고전 작품 하면 으레 읽으며 머리가 아픈데, 말을 빙빙 꼬아서 머리가 아픈 것과 고전이라 머리가 아픈 건 많이 다르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전이 맞다. 작품 속에, 우리가 보통 한 페이지의 글에 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읽기에 약간의 부담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책을 '재미없다'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다. 300페이지의 책이 한 줄의 문장보다 의미 없을 때를 자주 목격한다. 「말테의 수기」는 독자로 하여금 한 줄 한 줄 신경 써서 읽을 수 있게 쓰여 있다. 극도로 압축된 문장의 의미를 고민하다 보면, 단순히 지문에 쓰인 내용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책은 사색을 이끄는 사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건, 인생에서 몇 차례 정도 찾아오는 전환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 사색의 조건

    그저 물 흘러가듯 이어지는 생각과 달리, 사색이란 머리를 쥐어뜯거나 머리에서 기름이 흐를 정도로 시간을 두어야 하는 골치 아픈 것이다. 이러한 사색을 이어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끈기와 경험이다. 한두 가지의 체험이나 생각으론 장기간 사색할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많은 경험을 했더라도 애초에 그것을 고민할 마음이 없다면 사색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작품이 허구의 산물이라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렇게 끊임없이 고뇌하고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말테는 사색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고, 심지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까지 지니고 있다. 재차 말하지만, 그래서 이 작품은 머리가 아프고, 그렇지만 그만큼 좋다.

     

    # 말테와 우리

    생각해 보면 말테와 우리 사이에는 꽤나 먼 시간적 공백이 존재한다. 그러니 말테의 사색은 우리의 실정과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그러니까 공포나 사랑 같은 감정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그래서 말테의 이야기는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는다.

     

    # 끝을 내며

    열심히 적어 보았지만 필자는 실은 작품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느낀다. 각 구절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을지 살펴보며 퍼즐을 푸는 듯한 즐거움을 느꼈지만, 그것을 한 데 묶어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아직 못하겠다. 기회가 되면 두세 번 정도 더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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