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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초엽 외,「놀이터는 24시」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8. 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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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별 작품에 대한 짧은 감상은, 블로그 내 '짧게 읽는' 게시글에 작품별로 보다 간단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총평

    놀이란

    쳇바퀴에서 잠시

    내리는 것


    김초엽 외, 「놀이터는 24시」 , 자이언트북스, 2021

     

     

     

     

     

     

     

     

     

    북펀드를 텀블벅이 아닌 알라딘에서 하는 것은 처음 보았고, 쟁쟁한 작가님들이 참여한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펀딩에 참여했다. 책을 받은 지는 좀 되었는데 읽을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책 맨 뒤에 펀딩 참여자 명단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책을 방치했다. 여담이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 닉네임으로 펀딩에 참여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싶다.

     

    여러모로 독특한 작품이 많은 책이었다. 다 읽고 보니 같은 주제에서 파생된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채롭다. 그렇지만 여전히 작품을 모두 읽고 나서 드는 교훈은 하나로 좁혀진다. 우리는 어려운 세상에 발붙이고 있고, 그 세상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이 놀이,라는 교훈. 참 재미있는 지점은, 이 책이 그런 놀이가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일과 놀이 사이에 놓인 다리 정도랄까. 살아감이 삭막하고, 마땅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분들에게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무언가 할 일이 하나쯤 떠오를지도 모를 테니.


    김초엽, 글로벌리의 봄

    김초엽 작가님의 작품은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어느 정도 문체나 사건에서의 반전 같은 요소는 눈치챌 때도 있지만, 그런 것을 알고 있더라도 매번 새롭고 즐겁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항상 일종의 교훈이 남겨져 있다.

    창조의 권능은 전지전능한 존재에게만 부여된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디지털 세계에서 행하고 있는 일들은 ‘창조’라는 단어에 가장 부합할 것이다. 가상현실 속, 혹은 기계 속의, 어쩌면 생명공학의 정수로 만들어진 인공 신체 속의 인공 존재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항상 이해받지 못한 많은 것들은 여러 기준에 따라 재단되고, 구분되었었다. 그로 인해 차별이나 혐오가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어떤 기준들은 유명무실해지기도 했다. 인공 존재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웨스트월드’라는 미드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나의 행복은 남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추구될 수 있다는 법칙이, 보다 다양한 ‘남’에게 적용되는 세상이 점점 오고 있다고 느낀다.

     

    배명훈, 수요 곡선의 수호자

    마음이란 뭘까. 우리가 코딩하는 수많은 것들처럼 그저 설정값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가?

     

    작품과 같이 미래가 흘러간다면, 앞으로 인간이 설 자리는 정말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일뿐 아니라 여가까지 로봇이 대신 향유한다면, 그리고 점점 복잡해지는 관계들 속에서 계속 새로운 로봇들을 만들어 낸다면, 결국 로봇들만의 사회가 만들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문득 그렇다면 그것은 지나친 사회가 아닐까 싶다. 과잉공급과 과잉수요의 세상. 실은 공급과 수요를 모두 줄여도 균형이 맞는데, 서로 물러서지 않으려 폭주할 뿐인 사회. 그런 사회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참신한 소재의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감각이나 깨달음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 정도 읽었는데도 그랬다.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이나, 어떠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을 고작 몇 줄의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지금껏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기능하고 있다. 기업의 판매에서부터 당근 마켓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적용되고 있다고 느낀다. 소비로봇의 필요성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고 공급을 조금씩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인간은 일을 무척 하고 싶어하는 존재인 것 같다. 물론 자동으로,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하지만 동시에, 아무리 세상이 편해지더라도 스스로의 손길이 한 번은 닿아야 안심하는 것이 인간이다. 마사로는 그런 인간의 이중적인 욕망에 의해 탄생한 이레귤러가 아닐까. 

     

    경제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않아서인지 아주 와닿지는 않았다. 공급 곡선의 지지자들이 수요 곡선의 수호자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흥미롭고 신선한 소재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편혜영, 우리가 가는 곳

    논다는 건 뭘까. 크게 보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모두 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극한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놀이를 할 수 있는가? 일상에서 벗어나며 그것을 놀이라고 느낄 수 있는가?

     

    실종 대행업체...라는, 법과는 친하지 않을 사무소를 운영하며 '나'는 다양한 삶들이 놀이터로 떠날 수 있게 조치해주었으리라. 작품은 억눌리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난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것은 놀이터라는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와 '나'가 떠나는 길은 왁자지껄하고, 새롭고, 흥미롭고, 인정 넘친다. 별 것 아닌 일에 박수 치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아무 곳도 아닐 수 있는 곳에서 그렇게 즐거울 수 있는 건, 역시 그곳 또한 놀이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품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교훈을 주는 수수께끼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 든 이야기 또한 고심해서 포장한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장강명,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

    솔직히 두 번 정도 끊어 읽으려고 꺼내 들었는데, 단번에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작가의 고통과 그 해결책이 너무도 신선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었기 때문에, 책 전체를 산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

     

    작품의 발상은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너무도 발달해버린 현대 세계에서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하는 결말을 얻을 수 있을까?

     

    다 읽고 나서 '그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에 몰입하는 것과 놀이를 즐기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놀이는 아무래도 잠시 스위치를 꺼두는 것에 가깝고, 그런 점에서 불을 더욱 밝히는 것과는 다르다(일에 몰입한다는 건, 내면의 불꽃을 더 환히 태우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님이 작품에서 묘사한 헤드셋의 효과를 몸소 증명하는 듯한(??!) 문장들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이 너무 재밌고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근시일 내에 한 번 더 읽고 싶은 작품.

     

    김금희, 첫눈으로

    술은, 원래는 휴식과 같아야 한다. 술은 사람을 무방비하게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을 잊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장이 좋아하는 회식과 술은 국장에게는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소봄을 비롯한 직원들에게는 그저 불편한 사회생활의 연장일 뿐이다. 

     

    작품 중간중간 소봄의 제어가 풀리는 지점(?)을 보면, 항상 술이 함께하고 있다. 조마조마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런 점에서 소봄은 걱정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작디작은 성취를 위해 원치 않는 꿀 바른말들을 해야 하고, 도와주지 않는 직장 동료를 견뎌야 한다. 그것은 지민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인데, 일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접어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팬데믹이라는 단어가 일상에 혼재하더라도, 개인이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온전히 부여되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동시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몇 줄의 이야기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구나 싶었다.

     

    박상영, 바비의 집

    실은 조금 난해했다. 인물들의 내면이 상당히 뒤틀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읽는 내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망가뜨리며 놀아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라이온 킹 사자 인형 꼬리를 쥐어뜯으며 즐거워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는 사자 꼬리를 미용해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

     

    뭔가 생각해보니, 사람은 억눌리는 것이 있으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을 분출하는 것 같다. 결국 적당히 스트레스를 풀어 주어야, 과잉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스트레스가 매일 겪어야 하는 일이나, 가족에게서 온다면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테고... 그런 시점에서 이해해 본다면 작품의 인물들이 보이는 행동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물론 지지하거나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면... 아무래도 작은 공간에 몸을 숨기는 심리일 것 같다. 억눌린 심리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왜 작은 공간에 스스로를 비집어 넣어야 하는걸까? 어쩌면 무섭고 복잡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잠시 격리하고 싶은 마음도, 현대인의 마음 어딘가에 있는 걸까? 아무튼 난해한 글이었다.

     

    김중혁, 춤추는 건 잊지 마

    작품을 읽기 전 생각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김중혁 작가님이 그리는 세계는 특정한 국경이나 대륙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마치 별개의 무대가 마련된 것처럼 새로운 배경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어떠한 배경 지식도 없이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 저건 한국에는 없는 건데' 하는 생각은 안 해도 된다.

     

    이번 세계관에서 가장 마음 아픈 말은 '2교대'였다. 군대에 있으며 3교대와 4교대라는 녀석을 아주 잠깐씩 했었는데 (24시간 근무지에 있었다), 3교대만 며칠 겪어도 죽을 맛이다. 하물며 12시간 2교대 근무라면... 아무리 쉬는 시간이 있더라도 사람이 할 일이 못 된다. 그런 상황에 내몰려야 하는 인물들이란 흔히 사연 하나둘씩 가지기 마련이다.

     

    주인공은 동물 인형을 디자인 할 때는 실제로 동물을 보지 않았고, 그 일과 멀어졌을 때 비로소 동식물과 가까워진다. 문득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행인 일이다. 적어도 진짜 동물을 보는 동안에는, 일 한다는 마음은 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춤추는 나무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그리고 정원의 분위기는 그래서 작품의 배경과는 묘하게 맞지 않다. 그러니, 그 식물들의 춤이 도피처의 역할, 그러니까 놀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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