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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외,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7. 26. 16:55728x90반응형
# 개별 작품에 대한 짧은 감상은, 블로그 내 '짧게 읽는' 게시글에 작품별로 보다 간단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2017년에 처음 서점에서 발견하였고, 싼 가격(?!)에 혹했다가 안의 내용에 감탄하여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총평
젊은작가상 10년의 길을
한 책에 접하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편혜영 외,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 문학동네,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매년 우수한 작가분들을 발굴해 소개한다. 2019년에는 1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판이 발행되었는데, 중간중간 빼먹긴 했지만 대부분의 수상작품집을 읽어 본 필자로서는, 놓칠 수 없었다. 독서에 취미를 가지게 되는 계기 중 하나는 마음에 드는 작가님이 생기는 것인데, 다양한 문체와 분위기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 취향을 찾기에 좋은 책이기도 하다. 각 작품을 읽고 남긴 감상을 남겨두니, 어떤 작품이 본인에게 맞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다.
편혜영, 저녁의 구애 (2010 제1회 수록)
김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식장과도, 먼 여자와도 그다지 가깝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저녁의 구애는 참 아무것도 아닌 꽃을 포장한 비닐봉지 같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공허하다. 기존에 우리가 누리던 희로애락과는 반대의 세계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저녁의 구애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느낀다.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운이 되는 이 세계에서는.
재난을 준비하는 장면을 보며 코로나19를 떠올려 보았다. 2019년의 우리는 그것이 2021년의 형태를 띨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일 우리가 미리미리 비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면 이런 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 작품에 한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사람은 닥친 두려움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으며(김과 같이), 그것의 존재를 다만 1초라도 예지 할 수 없다. 따라서 앞서 필자가 했던 가정은, 솔직히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끝으로 두 가지 이상의 사건을 서로 긴밀하게 엮은 모습을 보며, '잘 쓴 글은 이래서 잘 쓴 글이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느꼈다. 단순히 사건 두 개를 엮어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둘과 인물들이 모두 긴밀하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의 확보는 치밀한 구성에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김애란, 물속 골리앗 (2011 제2회 수록)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홍수 장면, 특히 그 속의 물의 이미지를 무척 닮았다 (이 작품이 2011년 쓰였으니 ‘기생충’의 이미지를 따라한 것은 결단코 아니다). 끈끈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물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일까. 재난 소설일까. 성장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이 너무나 다양하고 지난해서 성장하기 전에 굶어 죽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재난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재난 그 자체보다 그 속의 것들에 주목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재난형 성장지향 소설 정도가 되지 않을까.
2021년의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타워크레인이 세워져 있을까. 10년을 지나 우리 앞에 놓인 공사판의 숫자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저 위치만 조금 바꾸었을 것이다. 그러니 눈앞에 산재한 타워크레인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별 말없이 납득해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그것이 거친 물살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작품에서의 물은 인간은 밀어내면서 기계는 밀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산업사회를 닮았다. 적어도 ‘나’만큼은 저 혼란스러운 틈바구니 속에서 무언가 쟁취했기를, 그래서 살아남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문체가 무척 재치 있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이미지를 한 문장에 잘 녹여내서, 비유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명쾌하다. 심지어는 정확히 비유하는 바를 모르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 써 주신다는 점이 대단했다. 또 끝부분 아버지의 이미지는 마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했다.
끝으로, 작가님과 성별이나 연령대 상 접점이 크지 않은 주인공을, 그토록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게 감탄스러웠다. 인물을 설정함에 있어 충분한 사전조사와 이해만 있다면, 소설은 어떤 것이든 그려낼 수 있는 것이구나 싶었다.
손보미, 폭우 (2012 제3회 수록)
인물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마치 신호등 앞에 몰린 인파가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것처럼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아이돌 그룹의 멤버별 비중과 비슷한 것 같기도.
서로 반대되는 환경의 두 부부는 막상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이왕이면 잘 사는 쪽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 ‘잘 사는 것’의 이면에 들어 있을 스트레스들을 생각하면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바텐더 장을 통해 강사 부부의 겉모습을 보여준 점이 괜찮게 느껴졌다. 장이 있었기에 비로소 강사 부부가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느낀다. 끝으로 제목을 ‘폭우’가 ‘화재’라고 지었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도 느끼는데, 단 하나 마지막 장면만이 제목을 지지하고 있다.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2013 제4회 수록)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타인과 친구가 되는 것도, 수없이 오랜 시간을 거쳐 온 두 사람이 제 갈 길 가는 것도, 찰나의 계기만 있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신체적 한계로 인해 이룰 수 없는 꿈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묘하게 뒤틀린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묘하게 편견도 가지고 있고,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사고방식도 숨어 있는 것 같다.
# 작품을 처음 읽을 당시의 저와도 비슷합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나’라는 인물의 불완전함은 하루오와 연결된다. 여행지에서 만난 하루오가 해 준 그의 여행 이야기는 이를테면 ‘끝을 계기로 시작을 얻어낸’ 것일 텐데, ‘나’는 이야기 후반부에 갈수록 점점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어쩌면 여행을 떠나기 좋은 상황으로 몰아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오와의 만남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그것은 관계의 모호함이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발판이 아니었을까. 끝으로 ‘절반 이상의 하루오’라는 제목이 되게 재미있다고 느껴졌는데, 하루오가 이름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좀 충격이었다. 그 사실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알아채지 못한 선입관이 있다는 것 또한 충격이었다.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2014 제5회 수록)
상황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반 작업이 아주 착실하게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전쟁을 겪은 제희의 부모님, 그들의 삶, 그들의 삶에 의해 결정된 그들의 자녀의 삶, 그리고 '나'의 삶이 복잡하게 얽혀 그 상황을 만들어 낸다.
도덕성에 대해 두 가지 생각해 보았다. 도덕적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른가? 그렇다면 그 도덕성을 강요하는 것은 도덕적인가? 작품을 거듭 읽다 보면 뭔가 뚜렷한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나'의 행동은 이런 뚜렷하지 않은 감정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나중에는 다시 고민해 본다.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황정은 작가님은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지점을 은근히 뒤집어 버린다. 이 작품에서도 으레 '부모님의 책임과 헌신'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반전시킨다.
'자녀를 옆에 두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무관심한 남편의 병간호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내의 아픔은?' 같은 물음표를 던진다. 그러한 물음표는 구체적으로 수목원, 그리고 그 상류에 있는 맹금류 축사를 통해 조망된다.
2021년 현재, 이런 질문들은 상당 부분 수면에 올라왔고, 재조명되고 있으며, 또 새롭게 이야기되고 있다. 연민과 동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순 있지만, 그러한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지금보다 그 범주가 넓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집중하지 않았던 것에 눈을 돌리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만한 의미가 있었고, 지금도 충분히 시사점을 던질 만하다.
정지돈, 건축이냐 혁명이냐 (2015 제6회 수록)
왜 '건축인가 혁명인가'가 아니고 '건축이냐 혁명이냐'일까. 작품은 마치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이 글이 건축이니, 혁명이니?' 하고.
그렇다면 혁명이라는 건 글쓰기 방식의 혁명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작품에 혼재해 있는 수많은 혁명의 이미지를 뜻하는 걸까. 둘 다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논문이 있을까'라는 헛소리를 하고 흠칫 놀라기를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글은 방대한 아카이브와도 같이 보이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이미지의 배열이나 의도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단순히 전달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카이브 또한 배열 순서에 따라 의미를 지니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와는 다르다.
2021년의 시각에서 프로이트 아이고라는 건축물은 은마아파트처럼 생겼다. 그것의 폭파가 모더니즘의 종말이 전혀 못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또 밤섬 하면 아직도 「김씨 표류기」가 떠오르는데, 그 익살스러운 이미지와 작품의 밤섬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여기에 더해 요새 '블랙 팬서' 하면 '와칸다 포에버'만 떠올리지만, 실은 '흑표당'이라는 흑인 결사 단체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아무튼 '이구'라는 인물을 초점으로 종횡무진 세계의 건축과 역사와 혁명에 대해 논하는 글의 진행력과 끊어지지 않는 흐름에 감탄했다. 어려운 배경 지식이나 단어 같은 건 사실 현학적이라고 생각해서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건축을 전공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간곡하게 묻고 싶다.
미묘하게 작가님 본인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사실 그것이 인용문이었다는 식의 전개가 되게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렇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이구'라는 단어 아래 하나의 방대한 마인드맵처럼 보이는 것에 경탄했다. 정말 두 번 정도는 더 읽어도, 오히려 더 새로울 것 같은 책.
강화길, 호수 - 다른 사람 (2017 제8회 수록)
강화길 작가님의 작품은 각성제와도 같다. 매 작품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그것은 다시 읽었을 때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반성과 성찰의 매개체가 된다는 점에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다.
실은 작가님의 메시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변화하고자 하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메시지는 허공을 돌다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강화길 작가님의 작품은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호수 - 다른 사람」은 2021년 읽었을 때에는 그 메시지가 선명하게 읽혔다. 2017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솔직히 읽으면서 그냥 술술 넘어가기만 했는데, 그것이 '고민해본 적 없는 사람'의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때론 필자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면모를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내 안에 도사린 그런 모습들은 분명 오랜 시간을 통해 조금씩 형성되었으리라. 건전하지 못한 사고방식을 내재하고 있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안에 도사린 것들을 인정하고 끄집어내는 작업은 스스로를 어느 정도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든다. 하지만 그런 반성과 성찰, 그리고 더 나아가 실천이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는 걸 점차 알아냈기 때문에 그 정도 어려움은 감수할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작품과 작가님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왔을 테니 위에서 말한 마음가짐들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만일 당신이 으레 생각했던 것들, 혹은 해왔던 것들이 작품에 등장한다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기를 바란다. 이 작품은 행동을 가한 사람이 아니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충실히 그 감정과 상황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한 때는 스스로 믿는 것들이 전부 옳다고 여겼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간단한 격언을 이런 상황에 인용하는 상황이 옳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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