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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 「모모」: 경청의 힘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7. 26. 15:25728x90반응형
총평
듣는 것이 힘이다.
미하엘 엔데, 「모모」, 비룡소, 1999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작품은 듣는 것의 중요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듣는 법을 잊으며 살아간다. 나의 말을 하는 데 급급하여 남의 말을 듣지 못한다. 물론 21세기는 자기 PR의 시대지만, 결국 대화는 말하는 것만큼, 아니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할 때가 많다.
주변 사람에게, 때로는 사물이나 동물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모에게 마을 주민들, 심지어는 모모의 적인 회색 신사들마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모모는 들음으로써 마음을 꿰뚫고, 해답을 이끌어 내고, 깨달음을 준다. 모모가 역경을 헤쳐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경청'의 자세였다.
모모는 별다른 상담 기술이나 대화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작은 습관 하나가 결과적으로 세계를 구했다(!).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가 보자.
대화에 필요한 건 화자(말하는 이)와 청자(듣는 이)다. 둘 사이에 적절한 상호작용이 있으면 대화는 성립한다. 그런데 보통 말하는 것은 '주체', 듣는 것은 '객체'와 흔히 이어지기 때문에, 흔히 '나'의 입장에서 말하기에만 집중하기가 쉽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경우가 많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마음에 여유도 없고, 그러다 보면 더더욱 '객체'의 입장을 고려하기는 어려워진다.
필자는 코로나19 이후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데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곤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말을 할 수 있을 때마다 묵혀둔 마음들을 꺼내놓기 위해 말 '하기'에 바쁜 경우가 많았다. 실은 얼마 전 친구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 자기 말만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 그건 필자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게 많아서, 듣는 것에 지루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반성한 기억이 있다.
당연히 모모도 무조건 듣고 있지만은 않다. 의사를 피력하기도 하고, 조언을 하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솔직히 모모는 그저 '조금 어른스러운 아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점이 없으며, 오히려 부족한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모는 조급하게 굴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듣고, 어떨 때는 감정을 듣고, 진정할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리기도 하고, 어떤 문제는 사실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지 별 것 아닐 때도 많다.
우리가 '경청'이라고 부르는 건 사실 그리 거창한 게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골라 던지면서도, 무언가가 나에게로 돌아올 것임을 알고 그것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다. 대화를 경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는 말과 비슷할까.
좀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에게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문제나,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하자. '어떤 일이 있었지?' 그리고 그 일을 회상하면서 조용히 본인의 말을 들어보자. 해결책이 당장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번 더 스스로의 말을 들어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리라.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리라.
회색 신사들이 꿈꾸었던 '시간을 빼앗은 세계'는, 서로 대화하지 않고, 더욱이 서로 듣지 않는 세계이다. 모모는 들음으로써 그 세계를 해체했다. 모모가 만들어나가는 세계는 아마, 내가 말하고 싶은 만큼 상대도 말하고 싶음을 아는 세계가 아닐까.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요즈음,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작품이었다.# 저의 감상을 담았습니다. 작은따옴표는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며, 책 내 문구가 아닙니다.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노력해서, 실제로 나아지는 블로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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