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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초엽 외,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6. 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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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어떠한 위기에서도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겁니다.







    김초엽 외,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문학과 지성사, 2020



    사실 구매한 지 조금 지난 책이다.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한 책들이 너무도 많은데, 이미 집에 쌓여 있는 것들을 간과한 탓이다. 그렇지만 SF, 그리고 팬데믹을 놓칠 수는 없었다. 미루고 미뤄오다, 2021년 백신이 본격적으로 열일해주는 이때, 아직 해소되지 않은 감정으로 글을 읽고 싶어 얼른 책을 펼쳐 들었다.

    날카롭기도, 따듯하기도 한 단편 6개는 제각기 다른 빛으로 독자를 맞는다. 팬데믹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책 한 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날것의 기분을 미리 짧게 정리해 두었었다. 그 감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리해서 선보이고자 한다.


    Apocalypse - 끝과 시작

    이미 끝이 나버린 것들의 시작을 담은 두 작품이다. 끝이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 또한 같은 기분으로 작품들을 읽었다.


    김초엽, 「최후의 라이오니

    SF는 우리 밖의 것을 통해 우리 안을 좀 더 내밀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전염병이라는 소재가 신물이 날 법도 한데, 생각 외로 코로나19가 아닌 전염병에 대해 접했을 때에는 또다시 감정이 둔해졌다.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별이 있고, 언젠간 수도 없이 많은 인류가 그 별들에 하나하나 자리를 잡을 것이다. 아니, 이미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수도 없이 많은 전염병들이 흔적처럼 따라붙겠지.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어쩌면 인류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단 한 가지는, 그럼에도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을 것이라는 위안 비슷한 것이었다. 여담으로 이번 작품의 발상과 반전 또한 감탄스러웠고, 작가님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듀나,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작품에 등장하는 전염병은 단순히 바이러스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바이러스의 매개체 자체가 전염병과도 같다. 점점이 흩어진 인류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바이러스 군집체와 다르지 않다. 공생 관계라는 웃긴 이름으로 인간은, 아니 인류는 오늘도 조금씩 죽음의 씨앗을 날려 보내고 있다.

    어찌 보면 대항해시대의 패잔병 무리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소재의 참신성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SF의 매력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듀나 작가님의, 사건을 잘 엮는 능력 또한 이 매력을 한층 부각한다.

    고래가 무엇인지, 그리고 거기서 온 사람들은 무엇인지 너무도 말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부터는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조용히 하는 수밖에. 여담으로, 듀나 작가님의 위상은 SF 작품들을 찾아보며 익히 들어왔다. 작품을 통해 작가님의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Contagion - 전염의 충격

    묘하게도 둘 다 제목에 '상자'가 들어간다. 아무래도 현시점에 가장 충격적인 건 바뀌어버린 일상인 것 같다. 우리 모두 작거나 큰 상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제목에 나름 일리가 있다.


    정소연, 「미정의 상자
    앞의 두 작품에 비하면 극도로 실제 삶에 부대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익숙하게 읽을 수 있었고, 그러자 지금의 삶이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추억과 가장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그림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다. 그런 달갑지 않은 모습조차도 우리의 현재라는 것에 슬퍼지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팬데믹 이전과 이후 사이의 공백은 마치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이 텅텅 빈 느낌이다. 따라서 '미정의 상자'는 주인공 '미정'의 상자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정해지지 않은 상자'인 것만 같다.

    가물하게 떠도는 추억들, 그리고 그것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들을 이미 지켜보았다. 2021년 현재는 논픽션이지만, 이 논픽션조차 SF와 동일한 범주로 부르며 웃어제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이환, 「그 상자

    SF의 전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여러 요소가 합쳐졌다. 그것들이 뒤엉킨 느낌이 싫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뭔가 배경 전체에 모노톤이 짙게 깔려버린 느낌이 든다.

    자원봉사자들이 사실은 '자원봉사'라고 보기 어렵고 그보다는 조금 더 '유급봉사'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일자리를 얻는 것만이 해결책이므로... 비난보다는 측은함이 입 안을 감돈다.

    만일 지금의 질병이 훨씬 높은 치사율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격리를 시행해야 했을 것이다. 제목을 보며 원룸이나 빌라나 아파트의 방들을 떠올렸는데,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떠올랐는데, 작품 속 세계의 회색조 물결에 너무 맞아떨어져서 놀랐다.


    New Normal - 다시 만난 세계

    생각해 보면 동명의 노래가 있다. 뉴 노멀의 시대가 오면 히트곡으로 급부상하지 않을까 싶다. 2019년과 2020년이 달랐던 것처럼, 2021년과 2022년은 또 얼마나 다를까. 얼마나 같아질까.


    배명훈,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차! 카! 타! 파! 의 소중함은 이 작품을 읽은 후 신고가를 경신해 버렸다! 읽는 내내 21세기 인간은 답답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와 정말 다 읽어서 다행이라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작품이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강력하고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너무나도 흐느적거린다. 뉴 노멀이 저런 것이라면 나는 강력하게 뉴 노멀을 반대한다! 또 2113년이라는 숫자가 오기 전에 빠르게 세상과 작별인사를 하고 말 거다(아마 원치 않아도 높은 확률로 작별 인사를 하고 말 것 같긴 하다)...!!!

    작품의 기법과는 별개로 소재 또한 신선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우리 시대를 바라본다는 건 2021년이 2019년을 바라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걸까. 작품 속 주인공의 마음이 되기 전에 어서 발...아니 빨리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마스그를 안 스면 이상한 그런 시대가 결국 오고야 만 것 같다.


    이종산, 「벌레 폭풍

    개인적으로 여섯 개의 수록작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팬데믹이라는 소재를 쓰면서 여전히 마음을 따스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다양한 미래 기술의 청사진을 제공해주었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구현이 가능한가 싶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사람 사이의, 연결되고자 하는 감정 또한 그대로일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질병에 묻혀 하지 못했던 걸까. 문득 학창 시절 동창들과 디스코드(게임 중계를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던 애플리케이션이다)로 짧은 모임들을 하던 최근의 나날들이 떠올랐다.

    포포는 무이와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기로 결심했으므로, 앞으로도 싸우는 일은 크게 없으리라고 믿어 본다. 사랑은 배려이고 적당한 거리두기라는 사실을 나는 깨닫지 못했었다는 점에서, 포포와 무이가 무척 강인하게 느껴진다.

    부디 검은색 빗방울들, 벌레 시체들 사이에서 아름답게 솟아나는 뉴 노멀이 펼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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