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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니엘 호손, 「나사니엘 호손 단편선」: 식민지 미국 엿보기
    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6. 2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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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과거 미국의 감각을
    담담하게 느낄 수 있는
    단편 모음


    나사니엘 호손, 「나사니엘 호손 단편집」, 민음사, 2005









    「나사니엘 호손 단편집」은 과거 유럽의 식민지로 불리던 시절의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기저에 깔려 있는 청교도 문화와 당시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한다면, 참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필자는 그렇지는 못했읍읍).

    단편집이라고 해서 마냥 가벼운 작품들만 있는 것은 아닌 것도 특징이다. 분량이 전체적으로 짧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실제로 분량이 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속에 압축된 이야기가 상당히 밀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편에는 거의 한 사람의 일생이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같은 상황이었다면 몰래 카메라라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을 규모의 방탈출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집단 린치를 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제 마을에 남은 '나'의 안위조차 걱정되기 시작한다.

    로저 맬빈의 매장
    전우애로 시작해서 참회로 끝나는, 인생의 한 단면을 담은 이야기. 참 묘하게도 운명이 돌고 돈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작품이다. 언약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의 흐름과는 별개로 로저 맬빈이라는 인물이 상당히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위기 상황에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나보다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을 품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 굿맨 브라운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껴졌다. 일단은 의심의 공포가 미지의 공포라는 점은 확실하다. 씨앗처럼 뿌려진 의심은 뿌리를 깊게 내려 안착하고, 안착한 뿌리는 뇌로 파고든다. 그것은 모든 알던 것을 모르게 만드는 공포이며, 젊은 굿맨 브라운이 분명 원치 않았을 일이었으리라. 노인의 목적은 타락일까, 교화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각일까. 초자연적인 환상을 모두 꿈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어폐가 있을 것 같다.

    웨이크필드
    결혼하고 나서 자취하고 싶다는 사람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다. 일주일이 20년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남편을 다시 본 아내는, 과연 어떤 말을 할까. 아니, 말을 하긴 할까? 공감하며 읽어보자면, 이 '웨이크필드'라는 인물이 후라이팬으로 세게 후려 맞았으면 좋겠다.

    야망이 큰 손님
    젊은이가 야망을 실현하기에는, 주어진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이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설인 이유는, 젊은이가 결국 계곡을 빠져나가지 못했거나, 아니면 야망을 계곡에 빠뜨리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라 그냥 옛날 이야기, 아니면 위인전에 수록된 단편이 되었겠지.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
    어떤 이에게는 통쾌한 결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관철된 결말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떠한 사상이더라도 폭력을 동반한 강요로는 관철될 수 없는 법이다. 오월의 왕과 왕비를 강력하게 응원한다. 오월제라는 제도에 대해, 그리고 당대의 삽화들에 대해 더 많이 이해했다면, 이 작품을 보다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

    목사의 검은 베일
    한평생이 담긴 단편. '무지의 베일'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검은 베일'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들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시간을 놓고 본다면 정말 충격적인... 아주 정말 충격적인 작품이다. 신성한 존재일 목사가 불길한 존재로 거듭난 것 같은 뒤틀림도 상당히 놀라웠다.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지만, 작품을 읽으면 또 신선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매력.

    반점
    작품 중간에 언급된 파워즈(Hiram Powers)의 '이브'라는 작품이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정식 명칭은 'Eve Tempted'이다.

     

    Eve Tempted

    americanart.si.edu

    신계와 인간계를 잇는 반점이 고도의 과학에 의해 소멸된다는 것이 무척 상징적이었다. 이와는 별개로, 사랑하는 이의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화학이 극도로 발전하였을 때의 청사진은 기존에 SF를 통해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김초엽의 「감정의 물성」이 문득 떠오르는 작품.

    천국행 철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는다면 작품을 더 즐겁게, 또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수고로움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천국의 도시>에 다다르지 못한 수많은 존재들은 오늘도 <양심>을 팔아 물질을 얻고 있겠지. 비록 종교를 믿지는 않으나, <허영의 도시>에서 일생을 보내기보다 더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스」 중반부 이후의 스토리라인과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
    17세기 오토마톤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극도의 생명력을 지닌 오토마톤을 만들어낸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라고 보고 싶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거의 공상과학의 영역이다. 현대에도 이런 기술력은 어디 엑스포에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다(심지어 기계태엽 장치로는 엄두도 못낼 것 같다). 극도의 기술력이 미와 닿아 있다는 발상이 신선하고 좋았다. 워랜드의 미에 대한 추구는 정교함과도 가깝다. 양 극단에 다가선 미와 실용성은 배치되는 감각인데, 정교함은 또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파치니의 딸 - 오베삐느의 작품에 관하여
    아름다움이 독과 비견되는 건 아마 화려한 독 있는 동식물(갑자기 Why 책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발상을 인간에게 가져왔을 때, 우리는 무당개구리를 보는 것보다는 장미를 보는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다. 라파치니 박사의 딸 베아트리체는 무림에 있었다면 '독인'으로 명성을 떨쳤을 텐데,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이선 브랜드 - 미완성 로맨스의 한 장
    유럽이나 영국 글들을 주로 읽어 왔어서 그런지, '이선 브랜드'같은 이름을 보면 미국 작품을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팍 터진다. 이 미국적인 이름의 사내의 안에는 마치 원죄와 같은 <용서받지 못한 죄>가 도사리고 있다. 결말이 덧없게 느껴져서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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