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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외,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7. 6. 02:34728x90반응형
총평
수상작은 말할 것도 없고
수상작이 아닌 작품들도
나름대로 읽을 맛이 있는.
황정은 외,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은행나무, 2019
수상 후보작들에도 익숙한 작가님들이 눈에 띈다. 이미 후보작 중에도 훌륭한 작품이 많지만, 아무래도 황정은 작가님의 '웃는 남자'를 넘어서지는 못한 모양이다. 이미 「디디의 우산」을 통해 작품을 보았던 전적이 있지만, 혹시라도 다르지는 않을까 싶어 구매했었다. 실상 다르지 않았지만, 흥미롭게 보았던 작품을 다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좋았다. 수상작뿐 아니라 수상 후보작까지 모두, 감상을 담아 보고자 한다.
황정은, 웃는 남자 (수상작)
장편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짜임새 있고 방대한 이야기다. 시간, 공간 모두 그렇다.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세계는 어느 정도 이어져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짜임새는 아무래도 작품 하나에 국한되지 않은 세계관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그 안에 든 메시지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을 인물의 시선으로 조망하면서, 현실성을 더하고 있다.
실은 동일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디디의 우산」을 읽고, LP에 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세운상가를 방문했었다. 상가는 조금은 기괴한 조형물을 입구에 둔 채 사람 하나 없이(코로나19 전이었다) 우뚝 서 있었다. 이미 작품에서 언급한 사건이 지나갔음에도, LP를 파는 상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소녀와 같이 몇십 년을 그 장소에 머물러 있었을 산증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장소와 음악은 두 사건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요새는 usb에 앨범이 담겨 나온다고 한다. CD 세대로서 CD 플레이어를 어렵게 구해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만일 그보다 앞선 세대였다면 전축과 각종 음향기기들을 구매하지 않았을까. 층간소음이나 벽간소음을 고민하는 자취러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도전해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생생하고, 조금 더 아름다운 기억들이 그 안에 있을 테니까.
끝으로 세월호 사건과 같은 비극은 앞으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면서도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단지 사건을 바라보며 화를 내고 비웃음, 냉소를 지을 시기는 지났다고 느낀다. 2021년의 우리가 「웃는 남자」를 보며 해야 할 건, 묵묵히 악수를 건네고 앞으로 나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걸어보는 게 아닐까. 워낙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오히려 정리가 안 되어서, 어려운 기분이다.
김숨, 이혼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이혼에 대해 논하게 되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작품을 읽고 난 뒤 꼭 필요한 절차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게 되는 인생의 큰 일인 결혼. 중요한 일인만큼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아직도 만연해 있는 '결혼이 필수'라는 인식과, 그 시선들을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작품을 통해 그런 감정들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사건의 흐름은, 이 결혼과 이혼에 대한 문제가 세대를 아우르는 스케일(?)의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 법적인 구속력의 결속을 믿는 건 세대별로 조금은 다르다고 느낀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진정으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럴 때 비로소 결혼이라는 제도가 긍정적인 결속으로 기능할 것 같다. 아무튼, 결혼은 커녕 연애도 꿈꾸기 힘든 나 같은 사람은, 결혼이라는 걸 한 발짝 더 멀리하고 싶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김언수, 존엄의 탄생
참 웃기다. 지금이라도 집 밖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일인 것 같다. 적나라한 시선을 가진 주인공을 보며 마냥 웃을 수도 없다.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그'는 결국 또 다른 본능의 존재인 개와 비슷하게 전락한다. 그 지점이 당연하게도 웃기지만은 않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지금은 작은 블로그를 꾸려 가는 사람으로서... 특출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예술계 레드오션의 삶을 맛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가능하면 나는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하며 살지는 않고 싶다.
윤고은, 평범해진 처제
여담인데 책 한 권에 작가가 얼마만큼의 지분을 가지는지, 작품 속 인물과 똑같이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았다. 시세는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여기에도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인적 정보까지 수많은 훑는 시선들에 넘겨야 하는... 인물이 나온다. 글만 쓰고도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오면 좋겠지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10원의 가치라도 얻으려면 모진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볼 수밖에 없다.
새삼스럽지만 육체적 본능에만 이끌리는 풍토(라기보다는 사람이라는 말이 정확하겠다)가 조금 더 싫어졌다. 물론 다들 사람이니까 생존 번식의 욕구가 조금씩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본능은 인간이라면 이성적인 사고와 건전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교훈을 얻어 간다. 적나라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대화 장면과 묘사 등은 현실성은 배가했지만, 작가님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의 방향이 어디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여름방학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보면,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게 매력적이다. 이름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고,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요즈음에는 많은 분들이 개명을 할 생각이 있거나 이미 하셨으리라 생각된다. 그 중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분이라면, 작품에 공감하기 더욱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작품에서 개명이라는 건 세대를 탈바꿈하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선 세대의 지극히 돌림자스러운 이름을 벗어던지고 트렌디한 이름으로 바꾼다는 건, 그 자체로 사람을 활력 돌게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로
요새는 당근마켓이 워낙 유행이라 중고거래를 다들 익숙하게 진행할 것이라 믿는다(처음 거래할 때 '비대면 거래'를 '문고리 거래'라고만 썼다가 나도 설명을 못하고 상대방도 처음이라 못 알아듣고 해서 되게 난감했다...ㅎㅎ). 그 이전 중고나라 세대에 활동하던 분들이라면 좀 더 확실히 공감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가 책을 냈는데 중고나라에서 팔리고 있으면 기분 그다지 안 좋을 것 같다. 거기에 코멘트까지 안 좋으면... 그런데 하필이면 사연까지 안 좋으면 이 삼박자를 어떻게 할까. 작가 본인이 떠맡을 문제는 아니었을 텐데, 괜스레 불쌍하다는 마음까지 들고 말았다.
편혜영, 개의 밤
이번에는 데릴사위와 다름 없는 주인공이다. 이 작품집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고통받고 있는데, 이게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느껴지는 것부터가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래서 흙탕물이라도 피는 그냥 머금고 만다. 데릴사위가 물속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결국 흙탕물에 몸을 담가버리는 것도, 피 같은 관계와 재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품을 읽고, 신념을 잃지 않는 삶이 무척 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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