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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 「런던 스케치」: 먼 런던, 가까운 런던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6. 21. 18:20728x90반응형
총평
런던의 골목길을
그리고 공원 내부를
속속들이 산책하는 기분.
도리스 레싱, 「런던 스케치」, 민음사, 2005
도리스 레싱은 세계문학전집을 정독하며 처음 접했다. 「다섯째 아이」가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새록새록이다.
개인적으로 「런던 스케치」에 생각보다 뭉클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만큼 섬뜩한 이야기들도 잔뜩이지만. 하나하나 감상을 말하기에 앞서,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써내는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런던 여행을 가본 적도 없는데, 런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기분마저 든다. 여행객의 시선이 아니라 더 흥미롭고 좋았다.
데비와 줄리
'비정상의 일상'이라는 말로 이야기 전체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시 이모와 줄리의 세대를 초월한 공통점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일상적인 기분을 품는다는 게 묘하고 이상하고 소름 끼쳤다. 출산 이후 아이와 함께 나오는 부산물인 후산물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생명의 탄생에 대해 좀 더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보다 신중하게,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참새들
런던의 참새는 우리나라의 비둘기 같은 것이 분명하다. 하는 짓이 한층 얄밉다. 한편 이방인을 바라보는 런던 시민의 시선이 흥미롭게 느껴진 작품이기도 하다. 노부부의 이야기를 특히 집중해서 읽었다. 둥지 속에 있을 아이의 새 출발을, 부인은 참새를 통해 기원하고 있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는 것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참새들만큼 교훈이 많은 이야기.
장애아의 어머니
개별화 교육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자녀를 어떻게든 '보통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너무도 이해되었다. 하루빨리 기술이 발전해서, '보통 학교'가 사라지고 학생 개개인별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어.. 그런데... 교사의 업무량이 늘어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공원의 즐거움
공원의 즐거움은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사슴과 염소의 드라마, 자유를 만끽하는 개들, 조건적으로 무해한 까마귀까지, 모든 것들이 적당히 섞인 게 공원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짧은 자유를 느끼는 개들의 이야기는 살짝 슬프다. 그들은 온전히 자유로울 수도 있을 텐데.
자궁 병동
2020 젊은 작가상 수상작 중 하나인 이현석 작가님의 「다른 세계에서도」와 엮어 읽기를 추천한다. 기존 생활로부터의 상실, 혹은 오기로 한 어떤 것과의 결별을 병동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도울 뿐이다. 여담으로 최근 '포궁'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이미 조금 된 이야기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단어이므로, 전공자 입장에서 기꺼이 쓰는 게 좋다고 느낀다. 좀 더 중립적인 단어라 마음에 든다.+) 2021.8.10 추가 [다른 세계에서도, 지금 링크 답니다!]
원칙
원칙과 양보가 언제부터 양립할 수 없는 주제였는지 묻고 싶다. 다만 작품 속 일이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애초에 차가 다닐 만큼 정비되지 않은 길에 그토록 많은 차가 뒤엉킨 시점에서, 문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사회 복지부
사람을 돕기 위한 일자리인 사회 복지부. 막상 그 안의 사람들은 본인을 돕기에 바쁘다. 그들을 고용한 자들이 마땅히 앞서서 그랬어야 하는데. 칸막이가 생긴 사회 복지부 사무실처럼, 사람 사이의 신뢰에도 보이지 않는 막이 생겼다. 이제 사람들은 본인도, 타인도 돕기 어려워져 버렸다.
응급실
응급에도, 급이 있다.
지하철을 변호하며
두 인물의 삶은 같은 런던에서 시작되었는데 하나는 런(run)이고 하나는 던(well-done)이다. 하나 더. 생각보다 런던은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늘어선 교회, 외국인을 불편해하는 어르신들... 과연 지금의 런던은 달라졌을까?
새 카페
단언컨대, 새 카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어떤 관계인지 대충 생각해 보았는데, 일단 남자가 좀 무책임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로맨스 1988
우리에게는 '응팔'과 '올림픽'으로 알려진 해의 이야기. 저 먼 대륙에서 벌어진 작은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분방한 관계들 중 하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로맨스의 조건이라면, 죄의식은 그것을 확실하게 만드는 계기다. 여기에 질서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로맨스를 일상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끈끈이가 된다.
진실의 대가
자녀의 생활을 위해 은폐한 진실이 있다. 은폐했다기보다는 무시당하고 멋대로 재단당한 것에 가깝다. 실은 진실이라는 건 결과적으로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큰 흐름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장미밭에서
정반대처럼 보이는 모녀는 우연히 장미밭에서 만난다. 가족은 가족이니까 그 본질은 닮고 실은 둘 다 서로를 걱정하고 있다.
폭풍우
이야기 속 택시 기사를 필자가 만났다면 당장 내려서 다음 택시를 찾았을 거다. 물론 마음으로만... 과거와 달라진 도시에 실망한 택시기사와, 과거의 런던에 머물러 있는 택시기사에게 실망한 승객 중 나는 후자의 편이다. 다만 택시기사의 마지막 항변이 필자로 하여금 그에게 (아주 조금의) 좋은 감정을 가지게 해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엇박자인 두 인물이 묘하다.
그 여자
'그 여자'는 군림자처럼 보이지만 약자다. 봐주고 있다는 '그들'의 태도를 여성들은 모여서, 숨죽여 지켜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입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단언컨대,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 또한 나아져야 한다.
흙구덩이
15년의 세월로 사라는 로즈와 제임스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을까.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라는 두 남녀의 새로운 이야기에서 발을 빼기로, 마음먹었다.
늙은 여자 둘과 젊은 여자 하나
매력적이었던 여성들과 매력적인 여성이 있다. 매력적인 사람은 굳이 티를 내지 않아도 사람을 끌어 모은다는 것 외에 이야기에 특별한 의미를 추가로 부여할 의무는 없다. 그저 이미지를 보고 즐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재혼
작품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이혼과 재혼 관계가 너무 다채롭고 다양해서 깜짝 놀랐다. 만일 내가 눈 앞에서 작품 속 광경을 보았다면, 당장 다음날에라도 비혼식을 올리지 않았을까. 조디와 마찬가지로 말이다.'깜빡의 서재 >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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