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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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싱젠, 「버스 정류장」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3. 14:00
세 개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 현대에 읽어도 충분히 재밌다. 개인적으로 희곡을 읽어 본 기억이 크게 없는데, 현대적인 감각의 희곡은 텍스트로 보아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 버스 정류장: '기다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사건이 '고도를 기다리며'와도 유사하다. 독특한 형식과 내용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인물들의 정서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웃으며 지켜봤다. ▶ 독백: 군더더기 없는 시나리오. 배우에 대해 메타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연극의 '제4의 벽'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녹아 있는 점이 흥미롭다. ▶ 야인: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게 해 준 작품. 가독성 측면에서는 세 희곡 중 가장 떨어졌지만,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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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그리예, 「질투」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52
시종일관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작품. 솔직히 작가의 심오한 맛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반복적인 이미지 덕분에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너무도 명확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파악하는 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품은 '질투'라는 감정을 가장 은연중에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식민지 플랜테이션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치밀하게, 초 단위로 나누어 집착하는 작품의 시선에 질려버릴 것 같았다. '나의 취향'을 콕 집어 말한다면, 취향에 걸맞은 작품은 전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는 마치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를 처음 접한 사람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접해버린 사람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또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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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 「폴란드의 풍차」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9
본격적인 사건 진행 이전에 등장한 가계도가 무척 섬뜩하고 구체적이었다. 작품은 '나'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코스트 가의 비극과, 몇 세대에 걸쳐 영지 '폴란드의 풍차'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인 코스트 가의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운명이라는 건 피해 갈 수도 맞서 싸울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력감마저 든다. 조제프 씨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는 마치 농촌 사회의 텃세를 보는 듯하다. 그런 공고해 보이는 질서를 비웃으며 고고한 모습을 보이던 조제프 씨는,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 코스트 가의 쥴리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좋은 결말을 맺지는 못한다(책 표지 그림은 쥴리의 모습을 그려낸 듯하다). 마찬가지로 사고를 피하기 위해 달아나던 코스트 일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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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이오네스코, 「대머리 여가수」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6
세 편의 현대 희곡이 담겨 있다. 앞서 리뷰에서도 밝혔지만, 희곡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녀석의 경우에는... 혜화역 공원 쪽에서 간혹 하는 현대극 그 자체다. 대머리 여가수: 박진감 넘치는 황당함, 그리고 실리에 맞지 않는 말이 핵심. 대머리 여가수는 누군지, 마틴 부부는 그래서 도대체 누구인지, 타국의 언어유희를 모두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아 아쉬웠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다. 수업: 언어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히 싸이코의 범죄행각만으로 작품을 바라보기 어려운 기분이다. 특히 다른 나라 말을 하더라도 그 나라 사람은 그 나라의 방식대로 이해할 것이라는 논리가 마음에 들었다. 의자: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대해 알게 해준 작품. 변사를 지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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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4
두 번을 읽었고, 한 번 더 읽을 생각이다. 특유의 경치 묘사와 감정선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 작품이며, 그렇게 했을 때 빛이 난다. 눈의 고장에 등장하는 다양한 흰색 이미지들을 떠올리면 따뜻하고도 차가운, 눈에 파묻힌 노천탕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그 안으로 들어가면 불에 타는 삶과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흰빛에 내재한 불씨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눈의 고장은 그 모든 이미지들을 다 흰빛으로 표백해 버린다. 두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우리도 휩쓸려 버리기 쉽다. 한편, 작품에서는 인간이 매 순간 변화하는 존재임을 상기하기도 한다. 외지인 사미무라는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바뀌어 있는 풍경을 보며 놀라지 않는다. 앞의 명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매 순간 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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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2
재현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긴 지시문이 매력 포인트인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희곡을 텍스트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연극을 보러 가기 어려운 때 마치 공연장에 온 기분이 들어 좋았다. 비교적 익숙한 셰익스피어나 보들레르의 인용이 그런 기분을 한층 더해주었다. 작품이 유진 오닐이라는 작가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한 흥미로웠다.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 또는 문학작품이 어디까지 허구여야 하는가 등 다양한 논의 거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도 그런 논의 거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작품은 작가 본인을 포함한 가족들이 모두 사망한 이후 아내에 의해 출간되었다. 모르핀 중독자 어머니, 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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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38
서술자가 워낙 많아 인물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작품이다.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니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진행방향을 좀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실상 작품 내 현재에는 아무런 발언권도, 행동권도 없다. 그래서 '나'의 주변인들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구도가 반복된다. 무능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남편 앤스, 그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는 아이들(주얼, 캐시, 달, 듀이 델, 바더만)이 겪는 여정을 목도했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품을 읽으며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작품은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읍내를 지나가는 흑인들에 관한 에피소드나, 듀이 델의 고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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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36
2019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의 가족을 다룬 단편 두 개가 수록되어 있다. 두 작품 모두 독일 민족에 대한 배경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소망 없는 불행: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즈음 독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나라의 과거와도 닮은 부분이 있어 보인다. 작가의 성찰적인 어조 또한 인상 깊었다. 작품을 읽은 후 소망 없는 삶은 만족하는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아이 이야기: 아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독일 민족에 대한 속죄가 가득한 작품. 전범국의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노골적으로 그리고 있다. 남자는 아이를 왜 파리로 데려갔을까? 드넓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저주받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