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
마스크에 낀 인형이야기 공방/에세이(?) 2021. 5. 2. 17:31
26일 가족 여행으로 청송에 들렀다. 사과나무가 무성한 동네였다. 지지대에 지탱한 나무를 보고 덩굴로 착각할 정도로 사과나무가 빽빽하고 많았다. 사과의 고장 청송에 하루 정도 있었고 하루 있었던 것 치고는 꽤나 많은 것을 보았다. 수풀로 들어가던 뱀, 창고같이 생긴 사과 직판장, 영화에 나왔다는 주산지 등 정말 많은 풍경들이 생각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이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마스크를 낀 인형이었다. 아니, 귀 상태를 보면 마스크에 끼인 게 맞지 않나 싶은 상태의 인형이었다. 숙소 지하에 있는 마트에 가다 앞쪽 포토존 같은 곳에 진열되어 있던 인형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인형에도 마스크를 씌웠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침울해 보이는 인형을 보곤 부모님께 저 인형 좀 보라며 웃었다. 그렇지만 ..
-
바보(?): 이태준「달밤」, 성석제「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깜빡의 서재/함께 읽기 2021. 4. 25. 00:50
개인적으로 이태준의 「달밤」, 그리고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두 작품을 읽으며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책을 다 읽고 돌이켜 보면서 두 작품의 사건이나 인물이 뒤섞여 좀 고생했다. 주제별로 엮어본 책들, 첫 글로는 '바보'가 등장하는 작품인 이태준의 「달밤」, 그리고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해본다. 공통점 앞서 간단히 밝혔던 것처럼 두 작품은 닮은 점이 상당히 많다. 1. 우선 두 작품 모두 '바보'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며, 둘 다 '황'씨이다(굳이 순서대로 본다면 이 '황'씨의 기원은 1933년에 탄생한 황수건이겠지만, 굳이 따지지는 말기로 하자. 또한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다. 이 점을 꼭 유의하자). 개인적으로, 독자가 두 작품을 헷갈려하는 가장 큰 이유 ..
-
정신 없는 하루: 일사병(?)이야기 공방/에세이(?) 2021. 4. 22. 17:42
알바를 신청하고 있다. 다양한 일을 접하는 것이 훌륭한 교사가 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겠다고 느낀 탓이다. 내가 직접 어느 정도라도 겪어 봐야,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거나 적어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교사 지망생의 입에서 '교사'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신청을 열심히 넣었지만 신입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력서의 퀄리티 부족인지 생각보다 연락이 오는 곳이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기간 문제로 잘 성사되지 못했다. 다행히 한 곳에서 흔쾌히 '면접'을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여 가보았다.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여서 별다른 이상이 없을 줄만 알았다. 생각해 보니, 집 밖을 나설 때까지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았다. 10시 20분경 내가 살던 곳의 기온은 18도 정도였다..
-
문지혁,「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작가 30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4. 21. 01:01
# 국어교육 전공자의 시각에서 든 생각을 담아 보았습니다. 총평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한국어. 그 한국어가 외부의 것이 되는 세계. 문지혁, , 민음사, 2020. 필자는 국어교육 전공이다. 한국어는 국어교육 전공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또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사랑스러운 언어다. 애증의 관계이긴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어가 망망대해에서 푸대접받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물가에 내놓은 장독대 같은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그동안 문학교육 관련 전공이나 21세기 한국소설의 이해같은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허구성이 소설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100점을 주어도 모자랄 만큼 허구성을 잘 활용하고 있다.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읽었다면, 에세..
-
교정 후에는 주름이 남을 수 있습니다.이야기 공방/에세이(?) 2021. 4. 20. 22:12
거울을 보는데 없던 팔자주름이 보였다. 볼을 팽팽하게 펴봤지만 손을 놓으면 다시 제자리. 효과가 없었다. 교정 치료 3년 간 부정교합으로 고생하던 아랫니는 반영구 철사에 의지한 채 가지런해졌고, 삶의 질이 올라간 것 같아 만족스럽다. 고른 이빨을 가지게 된 대신 주름이 생겼다. 장기간 교정기가 튀어나온 상태로 있다 보니 피부가 과도하게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교정이 끝났을 때 피부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은 거다. 모든 일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실제로 겪기 전까지 그렇게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득 실없는 비유를 생각해 냈다. 그러니까 고른 이빨이라는 장점을 얻어내기 위해 난 노력을 했고, 그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인 주름이 생기게 되었다. 개인적..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4. 19. 22:23
이상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의 눈에 찬다. 이상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적은 글을 발견하고, 어떻게 자신이 이상한지 적은 글을 남긴다. 그런 글이다. 에 등장하는 하리 할러, 그러니까 는 그의 이명(異名)에 걸맞게 '내향성과 고독, 야생성, 불안, 향수, 고향 상실'을 지닌 존재다. 그는 묘한 '마력'의 소유자이며, '고통'을 항상 몸에 담고 있다. 그렇지만 하리 할러는 겉보기엔 음울해 보이는, 종잡을 수 없는 사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이 사내는 친절하게 를 남긴다. 이 수기에 쓰인 내용은 하리 할러의 삶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이 하리를 확 바꾸게 된다. 하리는 '스스로 자신을' 라고 주장했다. '공허의 흑염룡'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이..
-
공선옥「명랑한 밤길」속 음악깜빡의 서재/책과 음악 2021. 4. 18. 11:11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면 뭔가 와 닿는 느낌을 받고, 다시 찾아서 듣게 된다. 음악은 인간의 희노애락, 인생, 그리고 경험을 모두 담은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에는 사람을 기분 좋게, 혹은 속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명랑한 밤길」에 나오는 음악들은 동시대를 살아온 독자들에게는 친숙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나를 포함한)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음악 체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간접 경험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음악과 텍스트를 함께 보면서, 인물들이 어떤 감정으로 소설 속 말과 행동을 하는지 한번 상상해 보면 좋겠다. 우선 첫 페이지 짤막한 가사들로 나왔던 곡들을 소개해 본다. 네 곡 모두 감성적인 발라드인 건 비 내리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1. 조용필,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1978년..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깜빡의 서재/책을 읽고 2021. 4. 17. 23:45
세 번째 읽는데, 지난 두 번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이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그 전에는 '기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다지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는데, 마지막 구절이 너무나 여운에 남았다. 총평 세상을 관조하는 이미 포기해버린 듯한, 그런 기린. 사진 출처: unsplash Jessica Bateman 작품에서 아버지는 이미 삶의 의지를 상실했거나, 혹은 속세를 벗어나 버렸다고 느껴진다. IMF 당시를 말 그대로 풍문으로만 들은 세대로서, 납치당하는 사람들의 일상성은 필자에게는 말 그대로 쇼킹한 무언가였다.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한 시절을 견뎌온,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무튼 기린은 그 풍파를 결국 인류의 모습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존재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