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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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5. 15:47
두 번 정도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파악해야 할 수수께끼가 가득한 책이다. 곱씹어 볼수록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다만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과 내용 전부가 걸맞는다는 느낌은 사실, 이제는 잘 들지 않는다. 홀든 콜필드는 조숙한 사고방식을 지닌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찬찬히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실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마지막 ‘정신과 전문의’와의 독대를 바탕으로 콜필드의 상태가 이상하다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필자의 시선에서 본 홀든은 그 나이대의 조금 특이한 아이가 가질 만한 생각들을 품고 있으니. 세상은 불합리하고 괴로운 곳이라 피비같은 존재를 지켜내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콜필드는 본인이 그 역할을 자처하고자 한다. 하지만 콜필드에게도 세상은 잔혹하다. 그가 파수꾼일지, 아니면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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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4. 11:25
작품은 원치 않는 아이를 대면한 정상 가족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부모 폴과 해리엇이 처음에 꿈꾸었던 정상적이고 북적거리는 가족의 풍경을 책의 말미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며, 이는 대부분 '다섯째 아이' 벤에 의한 것이다. 폴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다섯째 아이에 관심을 빼앗긴 넷째 아이는 점점 의존적으로, 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이에 더해,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망가져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벤을 보며 서글펐다. 그렇지만 온정적인 시각으로 보기에 '벤'은 워낙 엄청난(?) 아이다. 마치 사회의 안전까지 저해할 것만 같은 벤의 행동을 보면, 어디까지가 정상성의 범주인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자연'이라는 단어가 무섭게 느껴진다면, 그건 그것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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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싱젠, 「버스 정류장」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3. 14:00
세 개의 희곡이 수록되어 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 현대에 읽어도 충분히 재밌다. 개인적으로 희곡을 읽어 본 기억이 크게 없는데, 현대적인 감각의 희곡은 텍스트로 보아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 버스 정류장: '기다림'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사건이 '고도를 기다리며'와도 유사하다. 독특한 형식과 내용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인물들의 정서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웃으며 지켜봤다. ▶ 독백: 군더더기 없는 시나리오. 배우에 대해 메타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연극의 '제4의 벽'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녹아 있는 점이 흥미롭다. ▶ 야인: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게 해 준 작품. 가독성 측면에서는 세 희곡 중 가장 떨어졌지만,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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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그리예, 「질투」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52
시종일관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작품. 솔직히 작가의 심오한 맛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반복적인 이미지 덕분에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너무도 명확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파악하는 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품은 '질투'라는 감정을 가장 은연중에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식민지 플랜테이션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치밀하게, 초 단위로 나누어 집착하는 작품의 시선에 질려버릴 것 같았다. '나의 취향'을 콕 집어 말한다면, 취향에 걸맞은 작품은 전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는 마치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를 처음 접한 사람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접해버린 사람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또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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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 「폴란드의 풍차」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9
본격적인 사건 진행 이전에 등장한 가계도가 무척 섬뜩하고 구체적이었다. 작품은 '나'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코스트 가의 비극과, 몇 세대에 걸쳐 영지 '폴란드의 풍차'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인 코스트 가의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운명이라는 건 피해 갈 수도 맞서 싸울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력감마저 든다. 조제프 씨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는 마치 농촌 사회의 텃세를 보는 듯하다. 그런 공고해 보이는 질서를 비웃으며 고고한 모습을 보이던 조제프 씨는,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 코스트 가의 쥴리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좋은 결말을 맺지는 못한다(책 표지 그림은 쥴리의 모습을 그려낸 듯하다). 마찬가지로 사고를 피하기 위해 달아나던 코스트 일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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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이오네스코, 「대머리 여가수」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6
세 편의 현대 희곡이 담겨 있다. 앞서 리뷰에서도 밝혔지만, 희곡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녀석의 경우에는... 혜화역 공원 쪽에서 간혹 하는 현대극 그 자체다. 대머리 여가수: 박진감 넘치는 황당함, 그리고 실리에 맞지 않는 말이 핵심. 대머리 여가수는 누군지, 마틴 부부는 그래서 도대체 누구인지, 타국의 언어유희를 모두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아 아쉬웠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다. 수업: 언어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히 싸이코의 범죄행각만으로 작품을 바라보기 어려운 기분이다. 특히 다른 나라 말을 하더라도 그 나라 사람은 그 나라의 방식대로 이해할 것이라는 논리가 마음에 들었다. 의자: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대해 알게 해준 작품. 변사를 지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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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4
두 번을 읽었고, 한 번 더 읽을 생각이다. 특유의 경치 묘사와 감정선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 작품이며, 그렇게 했을 때 빛이 난다. 눈의 고장에 등장하는 다양한 흰색 이미지들을 떠올리면 따뜻하고도 차가운, 눈에 파묻힌 노천탕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그 안으로 들어가면 불에 타는 삶과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흰빛에 내재한 불씨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눈의 고장은 그 모든 이미지들을 다 흰빛으로 표백해 버린다. 두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우리도 휩쓸려 버리기 쉽다. 한편, 작품에서는 인간이 매 순간 변화하는 존재임을 상기하기도 한다. 외지인 사미무라는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바뀌어 있는 풍경을 보며 놀라지 않는다. 앞의 명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매 순간 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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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깜빡의 서재/짧게 보는 2021. 7. 2. 00:42
재현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긴 지시문이 매력 포인트인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희곡을 텍스트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연극을 보러 가기 어려운 때 마치 공연장에 온 기분이 들어 좋았다. 비교적 익숙한 셰익스피어나 보들레르의 인용이 그런 기분을 한층 더해주었다. 작품이 유진 오닐이라는 작가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한 흥미로웠다.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적절한지, 또는 문학작품이 어디까지 허구여야 하는가 등 다양한 논의 거리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도 그런 논의 거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작품은 작가 본인을 포함한 가족들이 모두 사망한 이후 아내에 의해 출간되었다. 모르핀 중독자 어머니, 폐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