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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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시선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15. 23:53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배와 등이 붙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왔습니다. 배가 고파서는 아니었어요. 내 속엔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할 심장조차 있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2012년 5월 23일에 공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축축한, 생쥐 냄새가 나는 그런 공장은 아니었구요. 그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장소였어요. 뱃가죽이 등가죽에 실제로 달라붙은, 머리만 볼록한 인형들이 줄지어서 솜 채우는 곳으로 갔습니다. 홀쭉해진 배와 등이 펌프질 한 번에 살을 되찾고, 뼈를 얻지는 못하고, 그렇지만 얇디얇고 이모티콘처럼 생긴 심장을 얻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그렇게 탄생된 생명들은 트레일러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흘러다녔어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죠. 나의 경우에는, 당신이요. 내가 당신과 처음 만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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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10. 23:54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이것은 얼마 전 꾼 꿈의 내용으로, 그 내용의 번잡함과 비논리함은 그대로 가져오되, 조금은 읽을 만한 것이 되도록 바꿔본 것이다. 참고로 명확한 기억도 없는 순간에 눈을 뜨자마자 이 별 수 없는 내용을 메모장에 미친 듯이 적어 내렸다는 점에서, 그래도 내 무의식이 인정한 '한 번 볼만한 기억'에 속한다고 자신해 본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몇 분 정도만 글에 투자해 보시길. 부녀가 마트에 들어왔다. 손을 잡고 있지는 않았는데, 아이의 타박거리는 작은 발과 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코 바람직한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발을 허우적대던 아이는 그다지 걷기에 재능이 없어 보였는데, 우려했던 바와 같이 마트 바닥에 으레 있곤 하는 철제 마감의 그 얕디얕은 턱에 걸려 결국 넘어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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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떠도는 편지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4. 23:26
제 순수 창작물입니다(제작중입니다). 1. 안녕. B야. 그러니까, 나야. 날 기억할거라 믿지만, 어쩌면 그렇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내 약자를 보고 기억이 나는 사람이 없다면, 죄송하지만 당신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 편지에 대해 잊어주세요. 이미 잊기에 어렵다면, 그냥 태워주세요. 아, 라이터를 쓰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일수도 있겠네. 그럼 그냥... 괜히 무리하지 말고... 그냥 근처 시냇물에 살포시 올려둬주면 고맙겠어. 언젠가 내가 다시 찾아갈 수 있게. 음... 이제 너라고 믿을게. 잠시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이야기 시작할게. 무척 긴 시간을 고민하다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어. 사실 주소를 알고 있는데, 다시 보니 왠지 확실치 않더라. 그리고 정말 그 주소로 보내면... 아니다. 그냥 확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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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말했다.이야기 공방/소설 2021. 5. 4. 00:30
저의 순수한 창작물입니다. 눈을 떴다. 먹을 수 없는 냄새가 가득했지만 따뜻한 굴에는 나와 비슷한 꼬물거리는 것들과, 그보다 월등히 큰 존재 둘이 있었다. 그들이 형제와 부모였다는 것은 개념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수많은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눈을 뜨게 된 지 몇 주 안 되어 보금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보단 매주 새 형제들이 생겼기 때문에, 정확히 숫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어찌 되었든 직전까지는 굴이었을, 후두둑 떨어지는 흙더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 위태로운 가로줄과 세로줄만이 작은 몸체를 지탱할 따름이었다. 생각보다 촘촘해서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발바닥에 걸리는 느낌은 전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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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에 낀 인형이야기 공방/에세이(?) 2021. 5. 2. 17:31
26일 가족 여행으로 청송에 들렀다. 사과나무가 무성한 동네였다. 지지대에 지탱한 나무를 보고 덩굴로 착각할 정도로 사과나무가 빽빽하고 많았다. 사과의 고장 청송에 하루 정도 있었고 하루 있었던 것 치고는 꽤나 많은 것을 보았다. 수풀로 들어가던 뱀, 창고같이 생긴 사과 직판장, 영화에 나왔다는 주산지 등 정말 많은 풍경들이 생각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이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마스크를 낀 인형이었다. 아니, 귀 상태를 보면 마스크에 끼인 게 맞지 않나 싶은 상태의 인형이었다. 숙소 지하에 있는 마트에 가다 앞쪽 포토존 같은 곳에 진열되어 있던 인형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인형에도 마스크를 씌웠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침울해 보이는 인형을 보곤 부모님께 저 인형 좀 보라며 웃었다. 그렇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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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는 하루: 일사병(?)이야기 공방/에세이(?) 2021. 4. 22. 17:42
알바를 신청하고 있다. 다양한 일을 접하는 것이 훌륭한 교사가 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겠다고 느낀 탓이다. 내가 직접 어느 정도라도 겪어 봐야,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거나 적어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교사 지망생의 입에서 '교사'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신청을 열심히 넣었지만 신입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력서의 퀄리티 부족인지 생각보다 연락이 오는 곳이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기간 문제로 잘 성사되지 못했다. 다행히 한 곳에서 흔쾌히 '면접'을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여 가보았다.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여서 별다른 이상이 없을 줄만 알았다. 생각해 보니, 집 밖을 나설 때까지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았다. 10시 20분경 내가 살던 곳의 기온은 18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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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후에는 주름이 남을 수 있습니다.이야기 공방/에세이(?) 2021. 4. 20. 22:12
거울을 보는데 없던 팔자주름이 보였다. 볼을 팽팽하게 펴봤지만 손을 놓으면 다시 제자리. 효과가 없었다. 교정 치료 3년 간 부정교합으로 고생하던 아랫니는 반영구 철사에 의지한 채 가지런해졌고, 삶의 질이 올라간 것 같아 만족스럽다. 고른 이빨을 가지게 된 대신 주름이 생겼다. 장기간 교정기가 튀어나온 상태로 있다 보니 피부가 과도하게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교정이 끝났을 때 피부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은 거다. 모든 일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실제로 겪기 전까지 그렇게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득 실없는 비유를 생각해 냈다. 그러니까 고른 이빨이라는 장점을 얻어내기 위해 난 노력을 했고, 그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인 주름이 생기게 되었다. 개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