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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 간 소음의 다정함에 대하여
    일상, 깜빡임/보다 일상적인 글 2026. 1. 4. 07:31

    ※ 그림은 인공지능, 글은 제가 담당합니다. 협업을 통해 만들어 나갈 앞으로의 결과물도 기대해 주세요!!


     

     

    # 층간 소음에 대하여

     최근 넷플릭스나 기타 여러 매체들에 소개된 '층간 소음'이라는 단어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좁혀 생각할 수 있어 보입니다. 첫째로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괴로움. 둘째로는 보복.

     집을 사랑하는 집돌이로서,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나만의 공간'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활동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어쩌면 집이라는 사실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침해당했을 때 어떠한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느낀 바 있습니다. 

     

     

     

    # 얇은 벽

     두 번째 자취방에 있을 때 벽 사이가 매우 얇았습니다. 합판을 덧댄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통통' 소리가 났어요. 집의 위아래 간격 또한 얇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느낀 불안의 정체는 굳이 말하자면 '두려움'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 외의 집에서도 유사한 수준의 생활 소음과 말소리가 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내가 시끄러워서 비난하는 소리'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조용해질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임용시험과 근무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 스터디를 저녁마다 진행했거든요. 어린 나이에 양해를 구해야겠다는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부끄럽지만, 속삭이는 말소리로 원룸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암기했던 지식을 뱉어내고 동시에 두려워했습니다.

     아, 두려움에 대해 말씀드리려면 한 가지 일화를 더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어느 날 음악이 듣고 싶어 스피커로 노래를 틀었습니다. 별 말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30분 즈음 들었을까요. 아래에서 '조용히 해! 죽여 버린다!!'라는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실 이 일화는 저의 부주의함에 대한 부끄러움...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자취방을 옮기고 나서 같은 음악을 더 큰 소리로 틀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가볍게 말해보자면,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층간소음에서 기인한 신고 건수는 2018년 1만142건, 2019년 7971건, 2020년 1만2139건, 2021년 9211건이었다고 합니다1). 이를테면 끊임없이 벌어지는 일인 것입니다. 기존에 얇은 벽을 지닌 집들이 갑자기 모두 보강되거나 사라지지 않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얇은 위안

     앞서 두 번째 '자취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성인 무렵부터 자취를 시작했는데요. 통학 거리가 멀어서 선택한 것이고, 홀로 지내는 것을 고대하였기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취 시기 배우게 된 다양한 집안일이나 요리는 아직도, 제가 생활을 보다 깔끔하게 해 나가는 데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말씀드릴 순간은, 무척 작은 순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까지도 종종 머릿속을 채우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홀로 잠드는 것이 두려운 순간입니다. 정확히는, 잠들기 직전에 아주 약간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순간입니다. 본가에 평소보다 긴 시간 다녀왔을 때, 혹은 군에서 전역하고 난 후 처음으로 다시 자취방에 입성하였을 때 공통적으로 그러했습니다. 분명 본가에도 제 방이 있었는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회상해 보면... 나와 같은 공간에 아무도 없다는 감각을 느낄 때 받는 두려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문득, 옆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정확히는 말소리라기에도 지나치게 작은 웅얼거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에게는,

    아주 얇은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적당히 커서 마치

    본가에 있는 부모님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거든요.

    그 소리를 듣고 나면, 그리 많지 않은데다 정체도 모르지만,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곤 했습니다.

     

     

    # 하고 싶었던 말

     한 글에 따르면, 층간소음을 이웃 간 배려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낭만을 넘어선 망상이라고 합니다2). 저도 일견 동의합니다. 심지어는 '나만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침해받는다는 기분은, 서로를 공격할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볼 수 있을지도요. 그런데 해결은 안 됩니다. 그러니 직접 해결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복수'라는 단어를 낳기에 충분합니다.

      우퍼를 사서 윗집에 놓을 만큼, 윗집에 찾아가서 칼을 휘두를 만큼 심각한 상황들을, 저는 들어만 보았지 실제로 본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만으로, 저는 위안을 느낄 수 있었을 저만의 공간에서 두려움을 일상적으로 체험하였습니다(사실 저만 시끄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옆 방의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분노를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때때로 혼자 살 수 있는 인생을 꿈꾸곤 합니다. 꿈속 삶에서 저는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저녁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 끝에 저는 깨닫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혼자 살 수 있는 인생'에는 배달, 잘 닦인 도로, 정비된 가로수 등이 빠지지 않는다는 걸요. 그러니 결국 제 세계 안에서, 진정으로 혼자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작은 순간이라도, 제가 느꼈던 위안을 기억해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참고한 글자료]_ 혹 문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언제든 삭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 최아름, [Market Analysis] 층간소음 사라질까 : 층간소음 사각지대 1441만호의 비애, 더스쿠프, 2022.6., pp.40-41.

    2) 김정덕, [Business Point of View] 층간소음 정책 만드는 사람들의 망상 : 정부·국회의 빗나간 층간소음 해법, 더스쿠프, 2025.10., p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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