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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재능에 관하여일상, 깜빡임/보다 일상적인 글 2025. 3. 12. 22:52728x90
2023년의 봄. 아니면 가을. 졸업반이던 나는 그동안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문예창작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부족함에 넌더리 쳤다.
수업의 구성은 시집을 읽고 합평을 진행하며, 자신의 문학 작품을 하나 완성하여 중간 점검과 함께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 수업에서 대부분의 학우들은 시집을 읽어오지 않았고(고등학생을 상대로 시집을 사 오도록 하는 수업을 기획하던 나에게는, 과연 될까?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중요한 틈새다) 작품들은 아마추어의 그것처럼 가벼웠다.
나는 ‘국어교육과’라는 타이틀에 지나치게 심취하고 있던 나머지, ‘착각하지 마시고’로 시작하는 장대한 헛소리로 합평을 시작했고 그 결과…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하고 ‘위기가 없’는 소설에 대한 혹평만을 남긴 채 학기를 마쳤다. ‘위기가 없’다…
실상 그 직전까지의 내 삶에는 숱한 위기들이 있었고 그 위기들을 현명하게 ‘결말’로 이끌어가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러니 나는… 다만 문학 속에서만큼은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다소 얕은 이상론을 펼치고 있던 셈이었다.
그 당시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위기는 해봐야 ‘불이 나서 가지고 있던 소지품이 불타버렸다’ 정도였고, 그 이상의 큰 위기는 지나치게 개인화된 무언가였으므로,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기억 또한 맥락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아마 나의 뇌리에 떠오른 참담한 기억이 과거 기억을 세탁했을 가능성이 크기는 하다).
이공계열이었던 그 학생은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왔을 내공을 바탕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시를 지었다. 말 그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격자무늬로 촘촘히 짜인 입체물을 상징한 추상 작품처럼 보였는데, (선택한 언어들이 다소 정제되었으나 그 맥락에 어떠한 연결점도 찾을 수 없었기에 이러한 감상이 든 것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은 그 작품들을 보고 완연히 미소 지었다.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것이 과연 ‘세계관을 통찰’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독창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내가 해당 영역을 ‘재능’의 영역이라고 퉁쳐버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경험 이후, 호기롭게 시작했던 공모전 출품 등의 소위 뻘짓들을 해봐야 소용없겠다는 확신이 들어버렸던 것 같다.
동시에 나는 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그러한 ‘이해 불가’의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마치 나라면 뭐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비합리적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그러할 텐데… 아무튼 그래서 나는 시험 문제로 나온 내용조차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공부하지 않았다.
2025년의 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존 시집에서 ‘좋은(이 ‘좋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감이 오지는 않는다)’ 시행 2개를 선별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이를 발표를 통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지면서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사고의 파편이 이토록 다채롭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시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언어들이 내 주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 야구부 학생이 ‘재미없다’는 감상평을 남겼을 때, 속으로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내가 이해하지도 못할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가?’
문학적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교사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이 명제를 부정하고 싶은데,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나는 ‘문학’보다는 ‘비문학’ 인간이 아닐까… 싶다. 그게 속상하다.
정제되지 않은 글을 한 무더기 쏟아내면서, 그래도 최근 일과로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이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출하는데 한 줌만큼의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사실 모든 일이 처음에는 잘 되지 않는 거라면, 그러니까 ‘재능’이라는 문워크 신발을 신지 않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라면, 난 조금씩이라도 내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 나를 감싸고도는 인물들을 창조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조용히 뒤에서 응원하듯 바라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그러한 형태의 물질적 버전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추상적 버전이 더 탐나기 때문에!
앞으로도
문을
계속 두드려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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