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달리는 남자를 봤었습니다.
    이야기 공방/에세이(?) 2021. 6. 3. 00:46
    728x90

    두 달 반 정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 와서야 게시하는 것은, 이 글을 선보일 창구에 올려봤다 거절당했기 때문이다(아직도 거절당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 글의 원본 같은 수준의 것만 세 개를 냈으니, 거절당하는 게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를 너무 몰라주고 있다 브런치). 지금 보니 분량도 너무 짧고, 메시지도 제대로 담지 못한 글이었다. 한 달 반 전의 나는 글은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성과만 내고 싶어 하는 존재였다. 지금이라고 뭐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진정으로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나아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계속 연습하는 것이다. 부끄러울 수 있는 예전 글을 가져다 각색하여 선보이는 이유이다. 내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의 점 속의 점 속의 점 속의 점도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나도 가끔은 쪼매난 반딧불이마냥 깜빡거리기도 한다는 걸, 과거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친구들과 약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직행하다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에도 심란한 마음이 들어, 사람이 하나도 없는 동네의 공원 벤치에 앉았다(한강을 산책할 때와 금강을 산책할 때는 인구의 밀도부터 다르다. 공원에도 동일한 법칙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뒤쪽에서부터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요새 워낙 흉흉한 일이 많다 보니 지레 겁을 먹고, 영화나 웹툰에 등장하는 온갖 사이코패스적인 시나리오를 속으로 그리며 앞만 보고 있었다(가끔 공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맨 정신이 아닐 때는 더더욱). 잠시 후 옆으로 어떤 실루엣이 지나갔는데, 누군가 오른팔에 스마트폰을 끼우고 달리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몇 시간을 뛰었을까였다. 혹시라도 며칠을 뛰었을까도 허무맹랑하게 생각해 봤다. 사라지는 그 사람의 모습을 지켜본 몇 초 간의 순간에 깜빡거렸던 것들이다. 그리곤 갑자기 달이 휘영청 뜬 달을 보고 '달밤에 체조'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달밤에 체조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체중 감량일까. 내일 아침 개운하게 일어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유난히 스트레스받는 하루였던 걸까. 어떤 이유라도 좋아 보이긴 했지만, 지나친 헐떡거림을 이미 들었던 터라 체중감량을 하겠다는 의지는 그닥 들지 않았다. 식이요법 정도라면 모를까.

     

    마스크를 낀 사람의 헐떡임은 멀리서도 크게 들렸다. 평소 우스갯소리로 ‘마스크를 자주 끼면 고산지대에 있는 것처럼 폐활량이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런 희망찬 말을 담기에 그 사람의 헐떡임은 지나치게 힘겨웠다(지금에야 백신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글을 쓸 시점에는 그런 생각을 잘 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더 그 헐떡임이 힘겹게 들렸다. 그렇다면 지금이라고 다를까. 사실 잘 모르겠다).

     

    문득 원 없이 고기를 먹으며 빵빵해진 배를 봤다. 그래도 한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기초체력을 기르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 한 달 정도 쉬니 말도 안 되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그렇지만 이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당연하게도). 뉴스에 2020년 1년 간 살찐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늘어났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2021년에도 똑같은 통계를 낸다면, 꼭 나에게도 설문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분명 2021년도 2020년과 같다는 연구 결과를 잘 이끌어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배 아래에 달린, 취기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의 다리를 보았다. 헐떡이는 몸을 부여잡고 최선을 다해 달리는 그 사람의 다리를 생각해 보았다. 두 다리는 모두 같은 인간의 것인데, 내 다리는 유달리 제 구실을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까지가 짧은 원래 글의 끝이다. 심지어 다듬고 분량을 늘렸는데도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글쓰기나 공부나 운동이나, 다 하면 늘고 안 하면 원래의 실력으로 퇴보하는 느낌이다. 셋 중 한 가지 정도는 잘 하며 살고 싶다. 셋 모두를 어중간하게 잘하며 살아도 좋을 것 같다. 글을 쓸 당시에는 무직 신세였다. 지금은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다니고 있고(블로그에 일사병 뭐시기 하는 글이 있는데, 그 글의 소재가 된 면접에 다행스럽게도 붙어서 일을 하고 있다. 그 후 한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생각은,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의 두뇌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충분한 각오 없이 시작했다가는 현타가 세게 온다), 나는 이제 달리지는 않지만 자전거를 탄다.

     

    일하러 가는 곳까지 자전거로 각각 15분과 10분 정도 걸린다. 걸어서는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야 했는데, 마침 다리 운동도 할 겸 자전거를 타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을 빼면 거의 한 달을 꼬박 자전거를 탔다(정말 매일 탄 건 아니고, 주에 4일 정도 탔다). 처음에는 고작 15분 왕복을 다녀와서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날 다시 자전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헬스장 3일째 정도에도 근육통이 오니까, 더 운동을 하라는 신호인가 보다 하고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았고, 다행히도 몸뚱이가 버텨주어서 다리 근육을 조금씩이나마 단련할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 인생은 레이스, 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들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그렇다. 인생은 레이스이며, 자전거 타기이며, 패러글라이딩이다. 갑자기 무척 짧은 거리도 택시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학원 선생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나도 돈이 아주 넉넉했다면 그냥 택시를 타고 다녔을까. 자가용을 사서 기사님을 불러 다녔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애초에 그런 상황이면 나는 집 안에만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종일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유튜브나 보고, 다시 자고... 하는 일상에 매료되어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은 기분.

     

    이를테면 뚜벅이에서 자전거 유저가 되고 자가용을 모는 드라이버가 되었다 기사님을 데리고 다니는 대기업 총수가 되는 것 사이에는 겉보기에 건널 수 없는 다리(?)같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두 다리를 그저 헬스용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시간들에는 번쩍 띄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미래의 다리를 위해 현재의 다리가 혹사당하는 기분이다. 그냥 다른 것 다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원하는 책을 읽으며, 아아 한 잔 땡기는 삶이 무척 땡기는 요즘이다.

     

    # 같이 읽으면 좀 더 이해될 글

     

    정신 없는 하루: 일사병(?)

    알바를 신청하고 있다. 다양한 일을 접하는 것이 훌륭한 교사가 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겠다고 느낀 탓이다. 내가 직접 어느 정도라도 겪어 봐야,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거나 적어도 대화에 참여

    ccamppak.tistory.com

    댓글

Designed by Tistory.